사형수에게 커피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실험을 시켰던 왕
커피가 유럽에 전파된 후 18세기 유럽에서는 커피하우스가 크게 유행했다. 커피하우스는 사교의 장이자 지식을 토론하는 토론의 장이 되었고 심지어 혁명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커피가 이렇게 크게 유행하자 일각에서는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는 '커피 유해론' 역시 고개를 들었고 커피가 과연 건강에 나쁜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러던 중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가 진짜 커피가 유해한 지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다. 구스타프 3세는 대표적인 커피 유해론 신봉자로 커피 금지령을 선포하기도 했었다. 구스타프 3세는 커피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지 않자 실제 인체에 실험해서 커피의 유해성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구스타프 3세는 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은 두 쌍둥이 사형수를 피실험자로 삼았다. 이들에게 종신형으로 감면시켜 주는 대신 쌍둥이 중 한 명에게는 매일 커피를, 다른 한 명에게는 매일 홍차를 마시게 했다. 쌍둥이인 데다 감옥에 갇혀 있으니 변인통제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스타프 3세는 만일 커피를 마신 쌍둥이가 먼저 죽으면 커피의 유해론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했고 의사들을 선임해 사형수들을 감독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실험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실험은 의외로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두 쌍둥이 모두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을 감시한 의사들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구스타프 3세 역시 46세이던 1792년 암살당했다. 결국 구스타프 3세는 실험 결과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먼저 떠난 것이다. 하지만 구스타프 3세가 사망했음에도 이 실험은 계속되었고, 결국 홍차를 마시던 쌍둥이 중 한 명이 83세를 일기로 먼저 사망하면서 끝이 났다. 커피를 마신 쪽은 더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몇 살까지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이 실험 결과가 알려져서인지 이후로 스웨덴 사람들은 마음놓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오늘날도 스웨덴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TOP 10에 든다고 하며,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함께 커피와 간식을 즐기는 전통 문화인 '피카(FIKA)'도 생겼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스웨덴 사람들은 자식 친구가 집에 놀러 와도 밥을 주지 않는다 ‘라는 밈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 때 스웨덴에서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다과를 즐기는 피카라는 전통문화도 있어요.”라고 해명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그러니까 밥은 안 준다는 얘기네?”라고 반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