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킨 전형필과 간송미술관
    카테고리 없음 2023. 5. 7. 22:13
    300x250

    전형필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설립한 수장가이자 문화재수집가이다. 증조 때부터 지금의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 석 부호가의 상속권자였다.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갔다가 조부모와 삼촌, 부모가 거의 같은 시기에 돌아가시면서 친부모와 양부모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백만장자가 되었다. 말이 백만장자이지 전국 최고의 부호였다. '나라 잃은 백성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어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 오세창(서예가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에게 감흥을 받아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말살되어 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하여 우리 민족 문화 전통을 단절시키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 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이 인멸되지 않게 한 곳에 모아 보호하여야 한다는 각오로 민족 문화재 수집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재력과 오세창의 감식안, 그리고 그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지식인의 후원으로 성북동 북단장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하원을 건축하였다. 주변에서 10만 석 가산을 탕진한다는 비방을 들을 정도로 문화재 수집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의 손에 수집된 김정희와 정선의 작품들이 이후 우리 미술사에 재평가되었으며, 김홍도, 장승업, 심사정 등 조선시대의 명장의 그림이나 여러 서예 작품은 물론,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자기와 불상, 불구, 와전 등의 문화재를 방대하게 수장했다. 또한 우리 미술사 연구를 위한 인접 자료인 중국 역대 미술품도 같이 수집했다.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1940년 동성학원을 설립해서 당시 재정난이었던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하였다. 광복 후에는 잠시 보성중학교 교장직을 역임하기도 했고, 문화재보존위원회에서도 활동했으나 항상 공직에 나가는 것을 피하였으며, 고고미술동인회(현 한구미술사학회)를 발기하여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62년 1월에 사망하자 그 해 8월 15일 대한민국 문화포장이 추서되고, 1964년 ㅐ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다. 그의 자제와 동료들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그의 가옥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 되었다. 보화각이 지금의 간송미술관으로 지금 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문화재의 상당수가 여기 있다.

     



    간송미술관에 있는 유물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 미인도와 화첩 등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이다. 미술관으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유물 대여 등을 하지 않았고 개방 일수도 적었다. 애초에 사유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최근에야 정식 미술관으로 등록했고 일반인 공개를 시작했는데 개방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관람이 까다롭다. 한번 개방할 때마다 인근 지하철역까지 줄이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여담으로 6.25 때 서울이 함락됐을 때 북한군이 이 유물들을 평양으로 가져가려고 시도했는데 이송 준비를 맡은 미술학자인 최순우 등이 준비를 하는 척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고 UN군이 서울을 탈환하여 이송을 막을 수 있었다는 야사가 있다. 이후 중요 문화재들을 부산으로 피난시켰지만 미처 피난시키지 못한 문화재가 그때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경우 전형필 본인이 직접 들고 피난했다고 한다. 기존 미술관이 개인 사유지고 건물 노후와 보관 등 문제가 많아서 대구시에서 이전 건립을 추진해서 2024년 9월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했다. 간송미술관 최초의 지역분관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 문화유산 등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300x25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