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선거제도와 문제점카테고리 없음 2024. 4. 10. 15:27300x250
[부연설명] 일본은 헌법 제1조에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라고 박아놓았을 정도로 천황이 국민의 위에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어 민주주의 투표의 기본 시스템인 '투표로 인한 정권 재창출'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1955년 창당 이래 자민당이 정권을 뺏긴 게 단 2회인데 기간 합쳐서 6년이 안된다. 자민당 정부가 제아무리 사고를 치고 지지율이 떨어져도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획득하는 건 자민당 내 다른 파벌이다.
1994년 자민당과 극우세력들이 강력 추진하여 중선거구제도를 소선거구제도로 바꾸면서 일본 야당의 입지는 몰락의 수준까지 떨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정까지는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거대 자민당이 한 선거구에 복수의 후보를 내면서 자민당 일당지배를 강화하고 파벌간 담합 등의 부작용이 생겼고, 그걸 막는다는 취지에서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꿨는데 오히려 국민들이 자민당 후보만 뽑아서 야당이 더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재미있는 패자부활전도 있다. 일본 선거에는 중복입후보와 석폐율이라는게 있다. 일본의 비례대표는 11개 권역에서 각 당의 득표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데, 소선거구의 후보 중에 자신이 출마한 선거구를 포함하는 비례대표 권역에 중복 입후보할 수 있어서, 낙선하더라도 석패율이라고 불리는 소선거구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제로 당선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매우 심각하다. 오죽하면 '정치는 참여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집권당에서 일부러 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선거일은 휴일로 잡지 않고 보통 일요일에 실시한다. 또한 선거율을 높이기 위해 별 노력을 안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실제 최근 투표율을 분석해 본 결과 투표율이 높을수록 자민당의 득표율이 낮았고, 역으로 투표율이 낮을수록 자민당에 유리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조직표가 탄탄한 자민당에 유리하다는 분석인데, 이것 때문에 일부러 자민당이 투표율을 높이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투표 시스템도 엉망이다. 투표용지를 집으로 보내주는데 정작 투표장에서는 본인 확인을 안하고, 투표용지에 사람 이름을 직접 써야 하며 고쳐 쓰면 무효이다. 이러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익숙한 이름을 쓰기 때문에 몇 대에 걸쳐 지역구에서 의원을 해서 같은 성을 가진 세습 의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그래서 정치인 가문은 자식의 이름을 쉬운 한자로 짓는가 하면, 아예 선대의 이름으로 개명한 후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만화에선 입후보한 후보의 표를 뺏기 위해 비슷한 이름으로 개명한 후보들이 무더기로 출마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후보 이름뿐만 아니라 당명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2023년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모두 자신들의 정식 약칭을 2009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으로 고집하고 있다. 이 정식 약칭은 투표소에 게시되는 정당 일람표에 공식 기재되는데 일본 선거법에 정당 약칭이 중복되면 안 된다는 법이 없어서 둘 다 민주당으로 썼다. 결국 정확한 구분 없이 그냥 '민주당'이라고 적은 무효표가 362만 표나 나왔는데 이걸 각 정당 득표 비율에 맞춰 임의 배분하는 촌극도 있었다. 비슷한 이름을 쓰거나 오타가 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애매한 표들 역시 모아서 그 후보의 득표율에 따라 나눠준다.
또한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각료 및 정부요직 역시 세습으로 대를 이어 해먹는데 중의원 기준 자민당의 세습 비율이 1/3을 넘는다. 즉, 핏줄만 가지고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치인이 될 수 있고 또 그걸 가지고 '정치 명가'라고 추켜세운다. 일본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선거 후보자 중 13%가 세습 정치인이었고, 당선 확률은 80%에 달했다고 한다. 세습 정치인 중 70%가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며 2000년대 이후 일본 총리 10명 중 7명이 세습 정치인이었다. 그러니 정치체계가 막부시대에서 별로 발전한 게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투표를 할 때 연필로 쓰게 법으로 되어 있는데 (볼펜 등은 번질 우려가 있어서 안된다.) 이전까지는 유권자가 한 번 사용한 연필을 회수해 재사용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난 총선은 코로나 때 치러져서 연필을 회수하지 않고 유권자가 가져가게 했다. 문제는 지자체별로 수십만 필에 달하는 연필을 조달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고, 조달한 연필을 깎기 위해 지자체 공무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연필을 깎아야 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겼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일본의 선거 시스템은 갈라파고스화되고 있다'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선거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다. 일본인 특유의 "옛날부터 그랬다"라는 마인드도 문제지만 집권당인 자민당에서 "유권자가 직접 이름을 적어 뽑아준데 자부심을 느낀다.", "정치가는 (유권자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하는 것이 일이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대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