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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츠시카 호쿠사이
    카테고리 없음 2022. 8. 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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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일본을 대표하는 우키요에(浮世絵, 일본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린 풍속화) 화가. 미국의 'LIFE'지가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계의 100인을 선정했을 때 유일한 일본인으로 뽑힘. 생애 3만 장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고 하며 판화 외에도 육필화 능력도 걸출했음. 19세기 유럽의 자포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고흐나 모네, 드가 등이 인상파를 열 정도로 19세기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었음. 호쿠사이는 책 대여점에서 일하던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어서 책의 삽화를 보며 공부를 했으며, 카츠카와 문화에서 그림을 배우다 이탈(파문되었다는 설도 있음)한 후 원근법이나 명암법과 같은 서양풍 표현을 포함한 다양한 화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35살 때 중국의 회화를 배우는 등 일본과 중국, 서양의 기법을 혼합하여 본인만의 오리지널 스타일을 만들어 냄.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아주 뛰어났다고 하며 후가쿠 36경,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의 작품 등을 발표함.



    호쿠사이는 50살때부터 그림 교본의 제작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총 15편, 4천 개의 그림 시리즈인 북제만화(北斎漫画, 마음 가는 대로 만연히 그린 그림이라는 뜻)임. 압도적인 데생력과 유머 넘치는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음. 즉, 현대에서 말하는 만화(일본어로 망가)의 시초가 호쿠사이라는 얘기임. 나이가 들어서도 창작열은 멈추지 않아 죽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오부세 천장의 '팔방을 노려보는 봉황도'를 육필로 그렸음. 가재도구가 하나도 없이 살았으며 식사는 노점에서 해결했고, 제자의 수가 천명 이상이었으며 이사를 93번 다녔는데 집이 지저분해지면 이사를 다녀서 하루 3번 다닌 적도 있다고 함. 90살을 넘어서까지 작품 활동을 하는 등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했는데 그의 장수와 건강 비결이 '소귀 나물'을 매일 먹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음. 90세 때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당시 '하늘이 나에게 5년의 시간을 더 준다면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함.



    일본의 유키요에 판화가 서양으로 퍼진 유래는 좀 특이한데, 시작은 유럽인들의 중국산 도자기에 대한 사랑이었음. 중국의 도자기가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중국이 명청 교체시기라 도자기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당시 중국과 교역을 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를 대체하기 한 공급원으로 일본을 선택함.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일본 도자기 120만점을 유럽으로 수출하게 됨. 여담으로 당시 일본의 도자기 기법이 발달하게 된 데에는 임진왜란에서 패전한 일본이 돌아가던 길에 우리 도공들을 납치해 갔기 때문임. 하여간 일본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던 도자기를 포장한 포장지가 유키요에였는데 이게 유럽에서 의외로 인기를 끔. 당시 유럽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대담한 구도와 강렬하고 순수한 색체, 과감한 생략 등에 매료된 유럽인들은 '자포니즘'이라고 하는 일본화에 대한 유행을 만들어 냄. 특이 이 유키요에에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고흐, 모네, 마네, 드가 등인데, 인상파를 만들어 낸 것이 유키요에라고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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