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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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는 혐한이었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1. 19. 00:10
북송 때 명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동파(동파는 호이고 이름은 소식이었음)는 당송팔대가 중의 하나로 그의 시는 당시 송나라는 물론 주변 국가들에도 널리 알려졌다. 특히 고려인들의 소동파에 대한 사랑은 매우 컸다. 특히 문인들과 지식인 계층에서의 소동파에 대한 사랑은 현대의 아이돌 팬심에 못지않았다. 동파의 문장은 금은보화가 창고에 가득한 부잣집 같다고 하는가 하면 그의 시를 일컬어 황하를 터트린 듯하며 만장의 불꽃처럼 세차다고 극찬했다. 과거 합격자가 33명이 나오자 '올해도 소동파가 33명 나왔다'라고 할 정도였으며 '소동파와 비슷하다'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은 자기 자식들 중 셋째와 넷째 아들의 이름까지 소동파 형제의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동파는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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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양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 9. 21:56
고려양. 고려풍이라고도 한다. 고려의 문화가 원나라에 퍼진 현상을 뜻한다. 고려의 대몽항쟁이 끝난 후 고려 출신 공녀들과 환관들이 원나라로 끌려가 궁궐의 후궁이나 궁녀, 시첩이나 시비가 되거나 군사들의 아내가 되었다. 이렇게 원나라 황실 내부에 고려인이 많아지다 보니, 이들을 통해 고려의 풍습이 전파되고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의복, 신발, 모자 등의 복식과 만두와 떡 등의 음식 등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또한 검은빛을 띤 푸른 색도 '아청'이라 하여 유행하였다. 이러한 고려양은 원나라부터 명나라 때까지 유행했는데 명나라 건국 후 100년 후인 홍치제 시대에야 원래 중국 풍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특히 의복에서 풍성한 치마와 저고리 스타일, 남성의 두루마기 등이 전형적인 고려양의 영향을 받은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