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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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를 반대했다가 파직당한 정창손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4. 5. 00:10
정창손. 조선 전기에 대제학,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집현전 응교로 재임하던 시기에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 사실 당시 세종이 '불만 있으면 기탄없이 반대의견을 올리라'라고 해서 부제학 최만리, 직제학 신석조, 직전 김문 등이 반대 상소를 올렸었는데 세종은 이들 모두를 하루 동안 의금부에 하옥시켰다가 다음날 풀어주었으나 정창손만은 유일하게 파직시켰다. 세종이 극대노하여 정창손을 파직한 이유는 그가 성리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정창손은 한글 창제를 반대하며 '삼강행실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서 백성들에게 읽게 하고 가르쳐 봐야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다.' 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누구나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으므로 평생 수양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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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장영실의 말년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7. 13. 00:50
기생의 소생으로 태어나 부산 동래현에서 관노로 있던 장영실은 (그래서 부산에 장영실과학고등학교도 있었다. 현재는 부산과학고등학교로 개명) 어려서부터 그 손재주가 남달라 태종 때부터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동래현의 가뭄을 수차를 이용해 해결하기도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자 세종은 그를 한양으로 불러올렸다. 세종은 장영실의 노비 신분을 면천하고 종 5품 상의원 별좌에 임명하고 천문기기 제작과 왕실의 물품 제작, 수리 등을 맡겼다. 이후 장영실은 천문기구인 간의대와 혼천시계, 금속활자 갑인자의 주조,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우량계인 측우기와 하천범람여부를 알 수 있는 수표 등 수많은 발명을 해 낸다. 세종은 장영실을 매우 아꼈으며 정 5품 사직, 정 4품 호군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