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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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 존경받을 위인이 아니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2. 10. 00:10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에서 의병을 이끌다 북간도로 망명했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간다. 여기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이범윤을 만나고 의병을 모집하게 된다. 이때 이범윤은 대장을 추대되고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임명된다. 이범윤과 안중근이 모은 300여 명의 의군은 제3차 화령 전투에서 5천 명의 일본군과 맞섰다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후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후 사로잡힌 안중근은 이토를 왜 죽였냐는 검찰의 질문에 “민 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 황제를 폐위한 죄, 을사늑약·정미 7 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등 이토의 15가지 죄상을 조목조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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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5. 12. 13:54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안중근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과 함께 계획을 짠다. 기차가 중간에 정차한다는 차이가거우역에는 우덕순과 조도선이,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분담하여 맡았는데, 차이가거우역에서는 러시아 육군이 보안을 이유로 우덕순과 조도선이 대기하던 역사 내 객사를 잠가버려 거사에 실패했다. 일본인으로 위장해 하얼빈 역사 내로 들어간 안중근은 회담자를 환영하기 위한 인파들 사이로 들어갔다. 당시 러시아 육군 헌병 및 육군이 호위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와 면식이 없어서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해 실패할 뻔했는데(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원태우 의사에게도 죽을 뻔했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자신의 사진이 밖으로 나도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일부 군중이 이토의 이름을 부르자 백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