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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 존경받을 위인이 아니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2. 10. 00:10300x250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에서 의병을 이끌다 북간도로 망명했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간다. 여기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이범윤을 만나고 의병을 모집하게 된다. 이때 이범윤은 대장을 추대되고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임명된다. 이범윤과 안중근이 모은 300여 명의 의군은 제3차 화령 전투에서 5천 명의 일본군과 맞섰다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후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후 사로잡힌 안중근은 이토를 왜 죽였냐는 검찰의 질문에 “민 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 황제를 폐위한 죄, 을사늑약·정미 7 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등 이토의 15가지 죄상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자신의 행동이 의거임을 명백히 밝혔다. 일본이 붙인 변호사가 개인적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몰고 가려 하자 이를 맹렬히 거부,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 목적이 동양 평화를 위한 행위임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안중근은 "나는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의 직무로, 하얼빈에서 전쟁을 수행하다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다. 지방재판소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일인즉, 만국 형법과 국제공법으로서 재판하는 것이 옳다." 며 자신이 군인 소속이며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은 교전 행위의 일환이므로 자신을 법정에 세우려면 국제법에 의거하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에 와서도 안중근 의사의 행동을 애써 테러리스트의 행동으로 폄훼하려고 하고 있다. 2014년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 기념관이 건립됐을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가 "안중근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라며 항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 안중근 의사는 진짜 테러리스트인가? 위에 언급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중국 정부의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은 “안중근은 저명한 항일 의사이며 중국인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라고 밝히고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우리 정부 외교부 대변인도 논평을 발표하여 스가 요시히데의 ‘몰상식하고 몰역사적인’ 언론을 질책했다.
테러의 정의란 무엇일까? 2005년 7월 25일 유엔 사무총장 안난은 기자 회견에서 각국에서는 테러리스트 정의에 대한 쟁론을 결속 지을 것을 호소하면서 ‘평민이나 비전투인원에게 사망 혹은 엄중한 신체 상해를 조성하는 행위는 모두 테러리스트의 행위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인 테러와 ‘정의를 위해 개인이나 집단이 의로운 일을 도모한다’는 의거(義擧)는 전혀 다른 행동인 것이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일으켜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대만,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을 침략, 고통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 일선에 선 괴수로 좁게는 대한제국을 망하게 한 원흉이자 크게는 세계 평화를 위협한 원흉이다. 그런 인류의 악을 처단한 것은 테러가 아니라 의거이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장면만 보더라도 안중근이 무분별한 테러리스트들의 행위와 다르다는 것은 명백하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인 수행원들에게 사격했지만 주변 러시아 인사들에 대해서는 총격을 하지 않았고, 총알이 남아 있음에도 사격을 멈추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후 일본인 수행원 3명에게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즉,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하시키려면 안중근 의사가 당시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의 일환인 작전을 수행한 것임을 부정해야 하며, 또한 당시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져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게 만들었으며 세계 평화를 위협한 원흉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뒤집어야 한다.
물론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점이 일본이 본격적으로 만주와 연해주 등을 침략하기 전이었고, 일각에서는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는 바람에 일본 내에 강격파가 득세하게 되었고 국권침탈이 무자비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일본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일본의 아시아 진출을 최고위에서 컨트롤하는 인물이었으며, 그가 대한제국 합병에 소극적인 온건파인 건 사실이지만 합병을 하지 말자는게 아니라 부작용이 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자는 관점이었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서 대한제국이 멸망했다는 논리나,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을 안중근이 죽였다는 논리는 가정에 기반한 상당히 비약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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