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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차의 역사와 차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 2. 00:20300x250
차례는 조상에게 달과 계절, 해가 바뀌고 찾아왔음을 알림과 동시에 시식과 절찬을 천신하는 의례이다. 과거에는 여러 번의 차례가 있었으나 현재는 명절로 통합되었다고 보면 된다. 차례에 차를 올리는 것은 사실 중국의 전통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유교를 받아 내려오면서 차례라는 이름을 쓰긴 했지만 차를 올린다는 개념보다는 조선시대 관홍상제의 규범이었던 주자가례에 있던 천신례와 참례가 차례로 통합되면서 이름만 가져온 거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도 벼 농사를 짓던 지역에서는 차례를 지냈으나, 밭농사를 주로 하던 북부지방에서는 차례가 유명무실하다가 차례가 전국적인 명절로 확산되자 나중에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여담으로 조선시대땐 차 문화가 거의 없어졌는데 남부 지방의 사원들에는 차 문화가 법제화되어 남았다. 한반도에 차는 7세기때 선덕여왕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후 흥덕왕때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으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승려나 화랑들이 차가 정신을 맑게 해 준다 하여 수행의 일환으로 차를 마셨다고 하며,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 사원 등에 차가 유행했다.
궁중에 전문 관리부서가 있었고 궁중 행사때 사용되었으며 귀족이나 승려들도 차 문화를 즐겼다. 고려청자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차 마시는 풍습이 계승되었고 궁중에서도 여러 행사에서 차가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궁궐에 다례를 주관하는 부서가 있었으며 각 관처에서 관리들의 차 심부름을 하기 위한 여성들인 다모들이 있었다. 문인들도 시를 짓고 친목도모를 하며 차를 즐겼고, 일반백성들도 약용으로 차를 이용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억불승유정책과 무거운 차세, 가난 등으로 차 문화가 쇠퇴하여 일부 승려들이나 남부 지방의 사원에만 남아 있었다. 19세기때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차를 즐기는 문인들이 늘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 시대에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차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시대땐 식민지교육의 일환으로 일본의 다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 이후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시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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