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세, 커튼세, 수염세... 유럽의 특이한 세금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 30. 19:36300x250
#창문세 같은 유럽의 특이한 세금은 일종의 #재산세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유럽 각국은 전쟁에 들어가는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다. 또한 시기적으로 봉건 시대를 지나 근대로 넘어가면서 왕권이 강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왕이 귀족들에게 세금을 걷고 싶어 했다. 하지만 토지를 중심으로 세금을 부과하려고 해도 당시 토지 측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창문이 많다 -> 값비싼 유리를 많이 사용한다 -> 잘 사는 집이다 -> 세금을 많이 내라'라는 일종의 부자 증세였다. 창문세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1303년 프랑스의 필리프 4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 때문에 폐지되었으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퍼져갔다. 1662년 영국의 찰스 2세는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난로세를 시행했는데 #난로세를 매기기 위해 징수관이 집 안에 들어가 난로 개수를 조사하는 것에 대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발생했다. 이후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윌리엄 3세는 성난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난로세를 폐지했다. 윌리엄 3세의 결정은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당시 세금 수입의 1/10이었던 난로세가 없어지자 국가 재정에 문제가 생겼고 대신 도입한 것이 창문세였다.
창문은 집 밖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창문세를 걷으면 사생활 침해 논란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으나 문제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합판이나 벽돌로 막아버리는 집이 속출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햇볕을 보지 못하고 환기가 되지 않으면서 우울증과 전염병이 만연했다. 그래서 창문세는 '햇빛과 공기에 물리던 세금'이라는 오명을 덮어써야 했다. 영국이 창문세를 도입하자 프랑스의 루이 16세도 따라서 창문세를 재도입했는데, 프랑스는 방식을 좀 다르게 했다. 프랑스는 창문 폭을 기준으로 매겼다. 당시 건축기술로는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벽에 큰 구멍을 뚫고 창문을 내는 일이 어려웠고 자연히 창문이 넓을수록 부유한 집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러자 세금을 내기 싫은 사람들은 창문의 폭을 좁히고 창문을 출입문이라고 우겼다. 프랑스 건축양식 중 폭 좁은 창문은 이 때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창문세는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되면서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건물 전체 면적이 아니라 '도로에 의한 면적'에 비례해 세금을 매겼다. 뿐만 아니라 커튼 길이, 창문 폭, 현관의 높이 계단 개수까지도 세금을 물리는 기준으로 삼았다. 네덜란드 집의 특징 중 하나인 좁고 긴 건축면적에 비좁고 가파른 계단은 이래서 생겼다. 또한 커튼의 길이가 짜리몽땅한 집들은 그때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특이하게 네덜란드 사람들은 커튼을 거의 안치고 산다. '숨길 게 없다'는 느낌이 강해서인지 누가 자기 집을 들여다봐도 신경 쓰지 않으며 집이 좁고 햇살이 귀한 것도 이유일 수도 있다. 영국 앤 여왕 시기였던 1712년엔 #벽지세가 있었다. 사람들이 벽지를 많이 구매하는 것을 본 영국 정부는 벽지 1평방 야드에 1펜스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1실링까지 비싸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벽지를 구입하는 대신 일반 종이를 구입한 뒤 직접 손으로 스텐실 작업으로 벽지를 꾸몄고 벽지 구입량은 줄어들어 벽지세 역시 세수가 줄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벽지세는 만들어진 후 124년이 지난 1836년에야 폐지되었다.#벽돌세는 영국 건축 양식 자체에 영향을 끼쳤다. 1784년 조지 3세 시절에 영국 정부는 식민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벽돌 1천 개당 4실링의 벽돌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건축주들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사이즈가 큰 벽돌을 사용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차피 1천 개당 내는 세금은 같으니 큰 벽돌을 사용해서 짓는 게 훨씬 이득이었던 것이다.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사이즈가 더 큰 벽돌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법을 개정했다. 문제는 이 벽돌세 때문에 벽돌 생산자들은 벽돌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하게 되었다. 건축업자들은 세금을 매기지 않는 나무로 건물을 짓거나 겉면에만 벽돌을 사용하고 속에는 그냥 큰 돌을 넣어서 벽을 올렸다. 벽돌무늬가 들어간 타일을 이용해 건물 전면을 꾸미기도 했다. 결국 벽돌세는 건축 산업 발전에 해가 된다는 지적을 받으며 66년 만에 폐지되었다.
우리가 흔히 트럼프라고 하는 카드는 11~13세기 경 동양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14세기까지는 손으로 직접 카드에 그렸기 때문에 가격이 비쌌으나 15세기 목판인쇄로 대량생산이 되면서 가겨이 저렴해져서 널리 보급되었고 영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카드놀이를 중독성이 있는 도박으로 판단하고(속으로는 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카드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는데 일종의 인지세 개념인 'playing cards tax'였다. 카드제조업자들은 세금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카드 중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에 정부에서 따로 스탬프를 찍어 인쇄 후 세금을 납부해야만 카드의 나머지 장들을 완성시켜 판매할 수 있었다. 이 세금이 점점 높아지자 카드 가격도 비싸졌고, 스페이드 에이스를 위조하는 등 부정행위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위조를 어렵게 하기 위해 스페이드 에이스의 디자인을 복잡하고 어렵게 고안했다. 16세기 초 시행되었던 이 세금은 1960년에 와서야 폐지가 되었다. 하지만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를 화려하게 만드는 전통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현재는 카드 제조업체의 정보를 표시하는 데 사용된다.그밖에 특이한 세금은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도입한 #수염세가 있다. 신앙심 깊은 러시아인들에게 면도는 신의 형상을 훼손하는 것으로 여긴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염세 도입 7년 후 러시아에 수염 기른 남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세금이 종교를 이긴 것이다. 영국에서는 신사들이 쓰는 모자에 세금을 걷었는데 세금을 낸 모자에 납세필증을 붙이거나 스탬프를 찍던 관행이 이후 모자 안쪽에 문자를 새기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세수 확보와 우수한 유전자 확산'을 명목으로 독신세를 물렸다.
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의 수달 주의 표지판 (0) 2023.01.31 우리나라 지폐 모델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이유 (0) 2023.01.31 개의 상체와 하체는 어떻게 구분할까? (0) 2023.01.30 저 일병은 장군과 다르지 않습니다. (0) 2023.01.30 파쿠리(표절) (0) 202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