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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군 장도장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9.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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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군 장도장.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粧刀)는 평상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뜻한다. 사극에서 여성들이 순결을 지키는 도구로 주로 나와서 여성들만 사용하는 걸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성인남녀 모두 들고 다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허리띠나 주머니끈에 매달아 일상적인 소지품으로 휴대하고 다녔으며, 여인들은 장도노리개 같이 장식용으로도 사용했다. 쉽게 말해서 맥가이버칼 같은 도구용칼 겸 장신구였다. 은으로 만든 게 많아서 은장도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허리춤에 차고 옷고름에 찬다 하여 패도(佩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불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되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몽골의 풍습이다'라는 설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

    사대부는 물론 일반 서민들도 장도를 많이 소지하고 다녔으며, 장도가 보급되면서 장식이 점점 화려해졌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명나라 사절이 요구한 물건중 은장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도 인기 있는 예술공예품이란 인식이 퍼져 있었던 듯하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3대 소지품이 거울, 빗, 장도였다고 하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여성의 정절을 지키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화되었다. 이 때문에 장도는 자살용이다라는 잘못된 지식이 전파되어 있는데 위에 언급했듯이 원래 목적은 도구용 칼이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최종방어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이 장도를 만드는 사람을 '도자장'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중앙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도자장도 있었다. 박종군 장도장은 2011년 장도장 보유자로 선정되었는데, 부친인 박용기 선생(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의 뒤를 이어 장도장이 되었다. 2006년 자신의 집터와 사재를 털어 장도전수관을 설립했고 현재 광양장도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장도를 제작하고 있으며 아들까지 대를 이어 장도장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만드는 장도는 수십만원부터 억대를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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