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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보다 우여곡절 많았던 박지성의 축구인생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4.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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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성은 안용중학교, 수원공고를 거쳐 1999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했다. 원래는 고교 졸업 후 연고지인 수원 삼성 입단을 희망했으나 당시 수원 MF진이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갈 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박지성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명지대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이미 선수선발이 다 되어서 테니스부의 T.O. 를 하나 빌려오는 편법을 이용해서 입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지대 선수로 뛰던 도중 우연히 2000 시드니 올림픽과의 연습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쳐 허정무 당시 올림픽대표의 눈에 띄어 올림픽대표로 발탁되었다. 당시 언론에선 '허정무 감독이 명지대 감독과의 친분 때문에 올림픽대표로 뽑았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어떤 기자는 대놓고 허정무 감독에게 "뇌물 얼마 받았냐?"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허정무 감독의 선수 보는 눈이 맞았던 것이다.

    이후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본 J리그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이중 좋은 조건을 제시한 도쿄퍼플상가에 2000년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축구선수 최연소 해외 진출 기록이었다. 박지성은 도쿄퍼플상가에서 뛰면서 1부 리그 승격과 일왕배 우승을 이끌었다. 일왕배 우승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일본 일왕배는 매년 1월 1일에 여는게 관례인데, 도쿄퍼플상가에서 자신들이 일왕배 결승까지 올라갈 거라 생각지 못하고 박지성과의 계약을 12월 31일까지로 해 놓았었다. 박지성은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무소속인 채로 뛰어 팀 역사상 유일한 우승컵을 선사해 주었다. 박지성은 2002 월드컵의 활약을 토대로 2003년 PAV 아인트호벤으로 계약기간 3년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진출 후 초반에는 리그 적응을 하지 못해 매우 고생했다. 오죽하면 홈팬들의 야유가 너무 심해서 히딩크 감독이 원정경기에만 출전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본인도 이때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를 했다. 하지만 적응 이후에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팀 최고 성적인 4강까지 이끌었다.

    챔피언스리그의 활약에 맨유 외에도 리버풀, 첼시, 데포르티보 등 유럽 여러 클럽들이 박지성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결국 박지성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적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EPL은 워크퍼밋이 있었는데 2년간 열린 국가대표 경기 중 75% 이상을 출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박지성은 대표팀 경기에서 64%밖에 뛰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박지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부르지 않았던 경기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발목을 잡았던 것. 워크퍼밋이 안된다면 유명 축구인 3명에게 추천을 받는 수밖에 없었는데 거스 히딩크와 알렉스 퍼거슨이 추천서를 써주었고, 나머지 한 장은 박지성과 별다른 일면식이 없었던 요한 크루이프가 써 주었다. 히딩크의 부탁을 받고 써 주었긴 했지만 요한 크루이프가 추천서를 써 준 이유는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맨유에 입단했지만 주위의 기대치는 낮았다. "유니폼 팔이로 영입했다.", "라이언 긱스의 백업으로 영입했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박지성은 네덜란드때와는 다르게 순탄하게 리그에 적응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후 부상이 박지성의 발목을 잡았다. 2006~07 시즌 초반 발목부상을 당해 3개월을 결장했고, 다음 해 4월에는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되었다. 결국 다음시즌 19라운드에야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시즌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록하며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지만 4강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음에도 퍼거슨은 결승에서 박지성을 엔트리에서 빼버리고 오언 하그리브스를 출장시켜서 결승전에선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30인 메달도 받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지성의 맨유 시절은 2011~12시즌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박지성은 그동안 잦은 국가대표팀 차출에 따른 혹사로 무릎 상태가 많이 나빴다. 대표팀에서 일찍 은퇴를 한 것도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경기에 뛰는 것보다 장기간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훨씬 무릎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이때 박지성은 대표팀에도 은퇴하고 리그에 집중하고자 몸을 만들어 왔는데 정작 퍼거슨이 박지성을 쓰지 않아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박지성 아버지인 박성종 씨에 따르면 자기 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한 박지성이 술을 마신 것도 이때였으며 결국 박지성은 7년 만에 퍼거슨과의 개인 면담을 가졌고, 이후 QPR로 이적했다. 하지만 QPR의 팀 전술과 박지성의 스타일이 맞지 않은 점과 QPR 내부의 여러 문제 때문에 최악의 활약을 보였다. 이후 2013년 PSV 아인트호벤으로 임대를 갔다. 이후 2014년 QPR 이적 이후의 폼 저하와 지속적인 무릎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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