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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가제 전술을 도입한 오니시 다키지로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9. 23. 00:10300x250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 일본 해군 소속으로 카미가제 전술을 제안하여 '신풍 특공대의 아버지'(特攻生みの親)로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인텔리 소속으로 일본 해군 제11 비행단의 참모장이었다. 의외로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진주만 공격을 반대한 인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국력의 차이가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 이유. 하지만 이후 상부의 명령에 의해 진주만 공격 계획을 입안하였다. 이후 중장으로 승진하였고 제1 항공함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데로 카미카제를 제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카미카제 전술은 이전부터 있던 전술이었고 처음에는 도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1944년 6월 마리아나 해전에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일본해군항공대가 현재 가진 전력으로는 연합군에 거의 타격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실감, 특공전술을 도입하자고 마음을 바꿨다.
패전을 얼마 앞둔 1945년 5월, 해군 군령부차장(육군 참모차장에 해당)으로 기용되었다. 이때 오니시는 '2천만 명의 남자를 특공대로 내보내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라는 2천만 특공론을 주장하며 전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8월 15일 일본이 결국 항복하자 다음 날인 16일 할복자살했다. 유서에는 카미카제로 산화한 병사들에게 사죄함과 동시에 살아남은 젊은이들에 대해 경거망동하지 말고 일본의 부흥과 발전에 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할복자살을 할 경우 고통을 덜기 위해 다른 사람이 목을 치는데 그는 그것을 거부, 할복 후 15시간 후 사망했다. 그가 자결에 쓴 칼은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중이다.
사실 카미카제 전술은 투입자원대비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전술이다. 양성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드는 엘리트 병과인 조종사를 단순히 1회용 폭탄으로 말 그대로 '낭비'해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저 작전에 대해 듣게 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키히토 황태자 조차 "그럼 그건 조종사를 낭비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중에는 조종사가 부족해지자 아주 기초적인 교육만 실시한 후 비행기에 태워 보냈기 때문에 그 성공률은 더 떨어졌다. 초기에는 피해를 입었던 연합군도 이후 방공전략을 세워 거의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카미카제 임무에 투입된 조종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강압과 반강제적으로 투입되었고, 국가의 항복을 조금 미루기 위해 인간의 생명을 바치는 인권유린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실제 2차 대전 말기 나치에서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을 자폭병으로 쓰는 전략을 고민하다 '너무 비인도적이다' 라며 포기했는데 일본은 이걸 직접 했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카미카제를 조국을 위해 자기 한 목숨을 바친 애국적 행동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전체주의와 생명 경시 풍조에서 사람의 목숨을 헌신짝으로도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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