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
수우미양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12. 9. 22:09
수우미양가. 과거 일본에서 유래되어 우리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던 성적 분류 제도. 절대평가라 시험의 난이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일률적 순위 줄세우기 등의 폐해가 지적되어 없어졌다. 일본에서 넘어온 평가방식이라는 점과 일본 전국시대와 임진왜란때 장수들이 적들의 귀와 코, 머리를 잘라 바친 수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는 이야기가 퍼진 것도 수우미양가 용어가 사라지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진짜 전국시대와 임진왜란때 사용한 용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수우미양가의 각각의 한자 뜻은 수(秀): 빼어날 수 - 빼어나다, 우(優): 뛰어날 우 - 뛰어나다, 미(美): 아름다울 미 - 아름답다, 양(良): 어질 량 - 좋다 또는 어질다, 가(可): 옳을 가 - 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있다. 등 모두 나름..
-
선조가 감싸돌았던 원균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9. 20. 23:49
원균의 아버지가 경상도 병마절도사 원준량의 아들인데 원중량이 자식을 부정입시케 하여 탄핵받은 적이 있는데 그게 원균이라는 얘기가 있다. 원중량 자식 중에 나이 맞는 자식이 원균밖에 없다고. 사실 원균이 고공승진을 기록하자 원균 집안에서 "쟤가 저럴 능력이 없는 애인데..." 라며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임진왜란이 다 끝난 후 선무공신 1등에 봉해졌으나 권율이나 이순신의 경우 정1품 품계를 받은 데 비해 원균은 종1품의 품계만 받았다. 권율과 이순신이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 및 부원군의 작호가 추종되었으나 원균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군의 작호가 추종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조정 내에서도 원균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선조의 고집으로 선무공신 1등급은 되었지만 ..
-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오판한 것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9. 19. 00:35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을 공격하면서 가장 크게 오판을 한 것이 1. 국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갈 꺼라고는 생각도 못함. 2. 백성들이 의병대를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할꺼라고 생각 못함. 3. 조선 정복지에서 보급과 급료 등의 비용을 충당할 것으로 계획함 이었음 당시 일본에서는 성이 함락되면 성주는 할복하고, 성의 주민들은 당연하게 점령군 장수의 소유물이 되는게 지극히 '상식적'이었기 때문임. 당시 일본군은 최단기간에 주파하여 한양을 점령하여 왕을 잡는 것이 목표였는데 왕이 냅다 튀어버려서 벙쪘고, 노예에 불과하여 보급창고의 역할만 하면 될꺼라고 생각했던 백성들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나 저항하는 것을 보고 당혹해 했음.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시대때부터 그런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
-
임진왜란때 실전에 투입된 원숭이 부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8. 18. 23:51
1751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임진왜란 당시 평양, 행주산성 전투와 함께 육상에서 거둔 삼대첩(三大捷)으로 꼽히는 소사 전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중에 원숭이 기마부대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명나라의 양호가 원숭이 기병 수백 마리를 데리고 소사하 다리 아래 들판이 끝나는 곳에 매복하게 했다가 말에 채찍을 가하며 적진으로 돌격했고,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 보게 되자 사람인 듯 하면서도 사람이 아닌지라 이를 괴이하게 여기다 혼란에 빠져서 대패,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다고 써 있다. 다만 이 택리지는 임진왜란 종전 후 150여년 후에 작성되었고 다른 조선의 문헌이나 명나라, 일본의 사료에선 원숭이 부대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어서 '원숭이 부대'에 대한 이야기는 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