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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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전쟁 고려의 항복과 쿠빌라이의 즉위 나비효과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2. 30. 00:10
1231년 시작된 여몽전쟁은 28년간 지속되었다. 결국 힘에 부친 고려는 몽골에 항복을 하기로 하고 늙고 병든 고종 대신 태자가 북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몽골의 칸은 몽케였는데 그는 남송 원정을 위해 수도를 떠나 있었다. 태자는 그를 만나러 수천리 길을 갔는데 가는 중 고종의 부음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던 태자는 3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를 표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남송을 공격하던 몽케 칸이 급사를 해 버리고 말았다. 이후 몽골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두쪽으로 갈라져 싸웠다. 이때 태자는 쿠빌라이를 만나 그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당시 중원을 장악하고 있던 쿠빌라이는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는 강했으나 몽골 본토와 중앙아시아의 몽골인으로부터 지지를 받던 아리크부카에 비해 정통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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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항목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쓰 마모루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9. 21. 00:14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인 시게미쓰 마모루는 USS 미주리호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인식에 일본 대표로 참여하여 항복 문서에 사인을 했다. 이 때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하는 사진이 찍혔는데, 일부 일본 사람들이 시게미쓰 마모루의 왼쪽 옆구리에 있던 지팡이를 일본도로 착각하고 "일본이 전쟁에서 이긴거다. 항복 사인에 칼을 들고 가는게 말이 안되지 않냐?" 라는 헛소리를 하고 또 그 헛소리를 믿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사진 말고 영상도 찍혔는데 거기에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게 누가봐도 명백히 나온다. 믿고 싶은 걸 믿는다는 사례가 아닐까... 하여간 저 서명 장면은 한동안 기록 영화에서 빼먹지 않고 사용되는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참고로 시게미쓰 마모루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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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500명을 투항시킨 가이 가발돈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7. 9. 22:49
가이 가발돈(1926~2006).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던 가이 가발돈은 1944년 6월 미군의 사이판 대공세에서 일본군 1천5백여 명을 혼자 생포함으로써 유명해졌고 이 공로로 미해군 최고 훈장인 '네이비크로스'를 수여받았다. 전쟁영화 '전장이여 영원히'의 실존인물이기도 하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해병대에 입대하여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어렸을 때 일본계 이민자인 나가노 부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컸던 그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했고, 장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적들이 사고력 없는 비인격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야간경계 중에 몰래 자리를 빠져나가 일본군을 항복시켜 데려왔다. 이 일이 계속되자 지휘관은 가발돈에게 새로운 보직을 맡겼는데 밤마다 적의 진지쪽으로 가서 사탕, 음식, 그리고 목소리를 주 무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