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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일야화 - 아라비안 나이트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2. 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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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야화. 페르시아 시대의 설화를 기반으로 이슬람 문화 각지의 구전문학과 설화들이 정리된 책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라고도 불리며 주요 이야기 180개, 거기에 딸린 이야기 100개, 짧은 이야기 100개에 달한다. 남동생과 제수가 각자 불륜을 저지른 이야기를 듣자 아내인 왕비도 불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성 불신에 빠진 샤리아르 왕이 처녀와 하룻밤을 잔 후 다음날 처형하는 것을 3년간이나 반복했다. 거리에 여자가 사라질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신의 딸인 셰헤라자드가 그녀의 여동생 듀냐자드를 데리고 와서 매일 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액자식 구성이다. 참고로 천일야화는 1000일(千日)이 아니라 1001일 밤에 들려준 이야기(千一夜話) 이다. 결말은 모든 이야기가 끝나 왕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칭찬하자 셰헤라자드는 그동안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을 보여주고 자신과 나라의 처녀들을 죽이지 말라고 탄원하였다. 그동안 마음이 누그러진 왕은 학살을 중단하고 셰헤라자드와 정식으로 혼인하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왕의 남동생도 두냐자드와 혼인해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이 천일야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이야기가 첨가되고 각색되어 페르시아, 인드, 이집트, 바그다드 등의 여러 문화과 구전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6세기 사산 왕조 때 페르시아에 있던 '천의 이야기'를 토대로 15세기경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4~15세기경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이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여러 사본이 발견되었지만 모두 다 중간에 끊긴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를 프랑스의 동약학자이자 작가였던 앙투안 갈랑(쿠란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 여러 나라의 판본과 구전을 포함하고, 각색하고 또 창작하여 1714년 출간했는데 이로 인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천일야화 중 가장 유명한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 이야기는 원래 필사본에 없었는데 시리아 쪽에서 구전되던 천일야화 이야기를 추가해 넣은 것이라고 한다. 갈랑이 번역한 'Les mille et une nuits'(1001의 밤)은 프랑스 살롱 사회에서 활약하던 여성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궁정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 언어로 번역돼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갈랑의 판본을 영국의 외교관이자 언어학자, 탐험가였던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이 1885년에 번역한 영역본이 나왔다. 버턴은 35개국어가 가능한 천재로 아라비안 나이트를 번역하기 위해 아랍인 지인들에게서 이슬람풍과 아랍 지역 사고방식까지 공부해 가고 영어에 없는 표현까지 만들어 가면서 죽기 5년 전에야 완역을 했다고 한다. 버턴의 판본은 갈랑의 판본에 비해 훨씬 외설적이고 잔인한 것이 특징인데 버튼의 판본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갈랑은 읽는 이에게 교훈을 주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일부러 그런 장면들을 지웠다.', '갈랑 외의 여러 번역본은 이슬라모포비아에 빠져 이슬람을 죄다 기독교로 바꿔버리고 내용도 다 수정했다. 갈랑은 이게 싫어서 무삭제로 옮겼다.'라고 주장하고, 반면 갈랑의 판본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버턴은 자신이 아랍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추가해 흥미 위주로 만들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금지된 내밀한 욕망들을 배출하기 한 독자들의 입맛에 맞춰 더 외설적이고 잔인하게 각색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버턴 사후 버턴 부인이 호색적인 부분을 대폭 삭제한 '버턴 부인판'도 출간한 일도 있다. (호색한 남편에 대한 복수?)

    사실 위에서는 천일야화가 1001일의 밤동안 있었던 이야기라고 적어놓았지만 1001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아랍 문화권에서 '끝없는', '무한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세기에 가장 박학다식한 작가이자 라틴문학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보르헤스는 원래 책 이름이 '천일 밤'이었는데 서구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1000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미신적인 공포 때문에 편집자들이 1을 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위에 언급했던 갈랑과 버턴의 판본에도 나와 있지만 18세기에는 '교훈을 주는 윤리적 이야기' 성향이 강했고(동화화도 이 때 많이 되었다.), 19~20세기에는 '신비한 중동의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판매금지도 많이 됐다. 아랍지역에서는 천일야화가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높이고 아랍세계는 격하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0년 영국에서 천일야화가 재출간되자 이집트 변호사 9명이 '천일야화에는 보수적인 무슬림의 정서를 해치는 음란하고 부도덕한 내용이 들어있다' 며 재출간 금지와 공무원들의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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