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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2. 12. 22:07300x250
채명신. 베트남전 당시 파월 한국군 사령관.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 6.25 때 참전하였다. 5.16 군사정변의 주역 중 하나였는데 군사정변 이후 본인과 같은 이북 출신 장교들이 쫓겨나는 걸 보고 미 육군 지휘참모대 유학을 통해 군사정권의 내부 칼바람을 피해 간다. 귀국 후 박정희가 6.25 때 정규전과 게릴라전, 대게릴라전, 후방침투 공작 등 다양한 군사작전을 했던 그의 경험과 능력을 높이 사 파월 부대의 초대 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베트남 전쟁 때 능력을 발휘해서 독립 지휘권 획득, 한국군용 C레이션과 M16 지원 등의 성과를 얻었다. 이는 평상시 채명신이 장병들을 각별히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민 보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베트남 현지민 보호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베트콩에 대해서는 강력한 공격을 병행,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여 투항 베트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전과가 워낙 혁혁했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그를 '살인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중장으로 예편했으며 예편 이후 감찰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외교관으로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맡기도 했다. 초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군 내외의 명망과 전공을 따진다면 대장 진급 및 국방부 장관 역임이 당연시 될 수도 있었으나 대장 진급에 실패하여 중장으로 예편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신헌법과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와 갈라서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한편, 반대편에서는 "ROTC를 등에 업고 '큰 일'을 하려 한다.", "여자관계가 문란하다", "베트남에서 축재를 너무 많이 해서 부하들이 연판장을 돌려 예편하게 됐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채명신을 지지하는 편에선 그를 음해하는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베트남전에서 3천 명이 넘는 많은 부하들이 사망하고 자신만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대해 항상 마음 아파했다고 하며 "내가 죽으면 현충원의 병사들과 같은 묘역에 묻히겠다"는 말을 생전부터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난색을 표했고 유족들도 반대 입장이었지만 본인의 생전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결국 본인의 생전 의지에 따라 사병 묘역에 안장되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장성 중 최초 사례이다. 여담으로 채명신 장군의 묘 위치는 마치 채명신 장군이 파월 장병 묘역의 부하들을 이끌고 지휘하며 나서는 모양새라고 한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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