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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사무라이와 상류층들의 동성애 '와카슈도'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8. 2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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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와카슈도(若衆道, わかしゅどう)는 16~18세기 전국시대와 에도막부 시대에 성행했던 동성애 문화였다. 처음은 여성에게 접근이 불가능한 사찰 스님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불교 교리상 여자와 관계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리에 남자랑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잖아?'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것이 높으신 분들과 사무라이들에게 전파하면서 '상류층의 고유문화'로 뿌리내렸다. 주로 8세 이상 20세 미만의 남자애들과 이루었으며 성인 남성은 공, 어린 소년은 수 역할을 했다. 어린 소녀들은 가발과 색조화장, 화려한 옷 등으로 꾸민 후 밤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이 와카슈도는 단순한 성욕 발산 외에 일종의 사무라이 도제교육 역할도 했다고 한다. 또한 신분이 높은 무사가 가신의 아들이나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자신의 수발을 들게 하는 코쇼라는 제도도 있었는데 밤시중도 임무 중에 하나였다. 사무라이를 육성시키는 한편 몸을 섞은 가신이나 부하가 주군에게 더 충성을 하게 되는 것을 이용하는 면도 있었다. 또한 당시 에도는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훨씬 많은 극심한 남초사회라는 점도 이유로 작용했다. 당대의 문학작품이나 그림, 가부키 등에는 이를 표현하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공문서에도 거리낌 없이 표현되기도 했다. 이후 에도에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굳이 남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메이지 유신 등을 통해 개화된 성개념이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오다 노부나가의 코쇼로 유명했던 것은 창으로 유명했던 마에다 토시이와 혼노지의 변 때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모리 란마루가 있다. (모리 난마루가 노부나가의 슈도가 아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후대 창작물에서 보통 란마루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경우 쇼타 속성을 지닌 미소년으로 많이 나온다.)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색을 즐겼을지언정 와카슈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출신이 하층민 출신이라 '높으신 분들의 고귀한 취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풍류도 즐기지 못하는 놈'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한 번은 가신들이 이런 악평을 잠재우고자 미동 수십 명을 집어넣은 방에 히데요시를 집어넣은 적이 있었다. 이윽고 히데요시가 미동 한 명을 데리고 나가는 걸 보고 가신들은 안심했는데 미동이 돌아온 후 총애를 받았느냐고 물어봤더니 "누나가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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