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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월드타워 건설 역사와 디자인 변천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1. 2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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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월드타워. 주로 롯데타워라고 불린다. 123층, 555m의 높이의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한해 타워 방문자는 약 5천만 명에 달한다고 하며 사용된 유리창만 42,000 창이라고 한다. 2010년 착공하여 2016년 12월에 완공된 후 2017년 4월에 개장했다. 본격적인 추진은 1994년부터였지만 1987년 서울시가 가지고 있던 잠실 부지를 매입하면서 준비가 진행되었다. 처음에 신격호 회장은 슈퍼타워는 무조건 100층 이상으로 지어야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국 최고는 물론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이를 원했고, 파리의 에펠탑 같은 서울 시민들에게 상징이 되는 타워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 후 후술한 국방부와 공군의 반대와 서울시와의 협상 등으로 실제 착공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서울공항(성남비행장) 활주로 진행방향에 있는 점과 고층에서 볼 때 서울공항 내부 시설이 모두 보인다는 점 때문에 국방부와 공군의 반대가 심했다. 서울공항은 민간공항은 아니지만 수도권 공군전력의 핵심이며 대통령 전용기나 외국 국가원수가 주로 사용하는 공항이다.

    롯데타워의 건립 계획은 국방부와 공군의 반대 때문에 전두환 정부 시절부터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정권까지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사돈이 롯데월드 사장 김응세였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6번째 대통령인 이명박 정부때 공항 각도를 트는 것으로 허가가 났다. 공항 공사비는 롯데가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허가를 반대한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기도 하고, 항에 주둔하던 KA-1부대가 원주로 이전했다. 롯데가 '공군 활주로를 공사하니 현역병을 쓰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당시 인근 주민들은 롯데타워가 세워진다면 고도제한이 풀리리라는 기대에 롯데타워 건설을 적극 환영하고 나아가 서울공항 이전도 추진했지만 주민들이 원한 것은 얻지 못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항공기 충돌 시 공군이 책임을 진다는 합의를 했던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항간엔 이명박이 롯데타워 건설을 허가해 주는 대가 중 하나로 롯데타워에 있는 시그니엘 서울 호텔의 평생 무료 숙박권, 혹은 한 층을 통째로 받았다는 설이 있는데 확인되진 않았다.

    롯데타워의 디자인도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94년 처음 추진했을 때는 일반 주상복합건물에 헬리포트를 얹은 디자인이었으나 공사가 무산되자 묻혔다. 중간중간 실험적인 디자인이 나오기도 했지만 메인은 아니었다. 이후 2002년 다시 추진될 때 나온 디자인은 처음에 신격호 회장이 '서울의 에펠탑이 되게 하겠다'라고 해서 그런지 에펠탑과 비슷한 모양으로 발표했다가 이런 걸 배껴서 디자인하면 나라망신이라는 서울시의 퇴짜를 받고 파기했다. 이후 첨성대 모양의 탑, 나선 모양으로 휜 탑 등의 디자인이 나왔다. 나선 모양으로 휜 탑은 롯데제과에서 파는 스크류바 디자인과 비슷해서 '스크류바 타워'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8년 각진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건 또 더위사냥과 비슷하게 생겨서 '더위사냥 타워'라고도 불리었는데 신격호 회장이 사람 목 베는 죽도 같은 디자인이라고 퇴짜를 놨고 최종적으로 한국 전통 오브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연한 형태와 단순미를 아우르는 곡선미를 가진 현재 안이 결정되었다.

    신격호 회장이 롯데타워를 지은 것은 그의 일생일대의 꿈이었다고 한다. 야사에는 어느 점쟁이로부터 엄청나게 높은 건물을 지어야 100살까지 산다는 얘기를 듣고 지었다는 얘기도 있다. (신격호 회장은 롯데타워가 완공되는 것을 보고 2020년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 그가 초고층타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위험도도 높은데다 고층타워는 수익이 빨리 나는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은 절대 그 뜻을 꺾지 않았다. 롯데타워 건설 당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롯데가 공사 속도를 늦추지 않고 조기 개장을 하려고 시도한 것 등의 행보가 신격호 회장의 생전에 건설을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 건설 이후에도 균열과 석촌호수 물 빠짐 등으로 사람들이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니야?'라고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자 신격호 회장과 아들 신동빈 회장이 집무실을 롯데타워로 옮기기도 했다. 참고로 신격호 회장의 마지막 공식 활동이 완공된 롯데타워에 다녀간 것이었다. 신격호 회장 사망 후 그의 운구차가 롯데월드타워를 한 바퀴 돌고 고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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