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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리스턴과 마취의 역사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5. 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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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의 영국의 외과의사 로버트 리스턴은 마취기술이 없던 당시 빠르게 수술해서 고통을 최소화하고 출혈을 줄이는 것만이 환자의 생명을 구할 확률을 높일 수 있었던 시대에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천재 명의였다. 당시 평균적으로 외과의사들은 4명의 환자를 수술하면 1명은 죽었으나 리스턴은 뛰어난 솜씨로 10명의 환자를 수술하면 그중 한 명만 희생되었다고 한다. 당시 외과 수술은 관객을 모아 놓고 실시하는 일종의 이벤트 같았는데, 어느 날 리스턴이 환자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던 중 리스턴은 환자의 다리를 잡고 있던 조수의 손가락을 함께 잘라버렸고 잘린 손가락에서 피가 튀자 당황한 리스턴은 칼을 빼다 구경하던 참석자의 외투를 자르게 되고 깜짝 놀란 참석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었다. 이후 다리를 잘린 환자와 손가락이 잘린 조수 역시 감염으로 사망하게 되어 전무후무한 사망률 300% 수술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망률 300% 수술이 너무 유명해서 그렇지 로버트 리스턴은 의학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현대 외과나 정형외과에서도 사용되는 여러 도구들을 발명했는데 리스턴 스프린트나 리스턴 나이프는 개발자인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밖에 동맥 지혈용 겸자도 리스턴이 발명했다. 무엇보다 당시 다른 의사들이 위생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을 때 리스턴만이 유일하게 위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술 전에 새 옷을 입고 손을 씻고 석탄산으로 환자를 소독했으며 깨끗한 수술도구를 이용해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밖에 어떻게든 환자를 고치기 위해 대기실에서 환자들과 함께 숙식을 하거나 환자에게 수술 일정이나 병의 예후 등에 대해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로버트 리스턴은 당시 미국에서 새로 개발된 마취 수술을 들여와서 유럽에서 최초로 마취수술을 한 의사이기도 하다.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 수술은 지금까지 리스턴의 장기인 빠른 속도와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었지만 첫 마취 수술 이후 리스턴의 소감은 "이 양키들의 수법은 최면술보다 훨씬 나은데?"였다. 리스턴은 1841년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으며 그의 사망 후에는 리스턴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 만들어졌고 그의 동상도 만들어졌다.

    에테르 이전에는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마취가 있었다. 사실 수술보다는 아산화질소를 마시면 웃음이 나오는 성질 때문에 웃음가스라고 불리며 사교모임 등에서 유행했다. 에테르가 마취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미국의 의사 크로포드 롱이었다. 그는 에테르를 마신 사람이 심하게 다쳤는데도 전혀 아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에테르를 이용한 수술을 시도했다. 롱은 이 방법을 자신만의 비법으로 여겨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한편 1844년 미국의 치과의사 웰스가 웃음가스 파티에 갔다가 자신이 다리를 다친 줄도 몰랐다는 것을 발견하고 무통 발치술을 시행해서 환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웰스는 이 사실을 하버드대학 부속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시연했지만 마취제가 부족해서 실패했다. 이후 웰스의 동업자이자 후배였던 윌리엄 모튼이 에테르를 이용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화학자 잭슨에게 들었고, 모튼은 매사추세츠 병원에서 역사상 최초로 무통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은 '마취 수술의 메카'가 되었다.

    하지만 마취수술을 가장 처음 성공한 사람이 누구이며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대하여 이후 웰스와 모튼, 그리고 모튼에게 에테르에 대해 알려준 화학자 잭슨 셋은 지저분한 싸움을 벌였다. 웰스는 이미 자신의 마취제를 '레테온'이라고 이름붙여 특허를 받은 모튼에게 밀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자살했다. 잭슨은 모튼에게 특허 이익의 10%를 내놓으라며 물고 늘어졌다. 모튼의 레테온도 웰스와의 싸움에서 단순히 에테르에 향료를 넣고 색을 입힌 거라는 사실이 들통나서 결국 특허가 취소되었다. 모튼은 이후 명성을 잃고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화학자 잭슨 역시 병에 걸리고 정신병마저 앓다가 보호시설에서 숨을 거두었다. 롱 역시 무통수술이 언론에 나오자 자신이 맨 처음 이 수술을 시작했다며 싸움에 참전했으나 지저분한 소송전에 진절머리를 내고 손을 떼고 본업으로 돌아갔다. 롱은 63세에 에테르 무통 분만으로 아기를 받은 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현재도 미국 의학회와 보스턴, 미국 의회는 각기 다른 사람을 마취의 선구자라고 인정하고 있다.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는 의사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지만 에테르의 폭발성과 역한 냄새는 문제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찻던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은 조수들과 함께 더 나은 마취제를 찾았고, 결국 클로로포름을 찾아냈다. 심슨은 1847년 11월부터 클로로포름 무통 분만을 시작했고 곧 외과 수술에도 사용되었다. 이후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할 때 클로로포름 무통분만을 받고 아주 만족하였고 프로이센으로 시집간 딸 빅토리아 공주의 출산도 무통분만을 추천하였으며 심슨에게 '통증을 정복한 자'라는 글귀가 새겨진 문장과 함께 작위까지 내렸다. 이후 클로로포름은 식품 등에도 널리 쓰였는데 활명수에도 1960년대까지 클로로포름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클로로포름 역시 유독성과 부작용이 지적되었고 현재는 다른 마취제들로 대체되었다. 여담으로 클로로포름은 오존층 파괴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며, 영화 같은 데서 누군가를 납치할 때 클로로포름을 적신 수건으로 상대의 입과 코를 덮어 기절시키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은 한참을 흡입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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