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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집 가정부가 늬들보다 잘하겠다" 윌리아미나 플레밍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7.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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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아미나 플레밍

    윌리아미나 플레밍. 스코틀랜드 출생인 그녀는 14살까지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20살에 나이에 제임스 플레밍과 결혼했고 다음 해 보스턴으로 이주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임신중인 아내를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22세의 플레밍은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하버드 대학 천문대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피커링 교수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게 되었다. 피커링이 가정부였던 플레밍을 자신의 팀원으로 고용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너희들보다 우리집 가정부가 더 일을 잘하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실상 플레밍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을 가르칠만큼의 교육을 받은 재원이었다. 피커링 교수는 1881년 그녀를 천문대 사무직으로 고용했으며 서류작어과 천체관측을 위한 몇가지 계산을 하는 관측 보조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피커링이 별의 스펙트럼선 중 수소선의 강도에 따라 별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도입하면서 플레밍의 도움이 빛을 발했는데 그녀는 피커링이 고용한 여성들을 관리감독하였고, 천문대에서 발표되는 모든 출판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에드워드 피커링


    이후 피커링이 1890년 "헨리 드레이퍼 카달로그"를 발표했을 때, 플레밍은 여기 기재된 수많은 별들의 스펙트럼들을 분석해서 분류했고 그 과정에서 59개의 가스성운과 변광선 310개, 신성 10개를 발표했다. 또한 1907년 자신이 발견한 변광성 222개의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플레밍의 발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88년 발견한 오리온자리의 "말머리성운"이다. 처음에는 피커링 교수와 그의 동생에게 발견에 대한 공이 들어갔으나 이후 플레밍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플레밍은 점점 유명해져서 1889년 하버드 대학 넟문대의 첫 여성 정식 직원이 되었고 1906년에는 미국 여성 천문학자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왕립 천문학회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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