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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의 톨킨' ,'중국의 셰익스피어' 김용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5. 2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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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金庸, 1924~2018). 본명은 자량융(查良鏞). 중화권의 무협소설작가이자 언론인이다. 중국 저장성에서 문인과 학자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그의 형제와 사촌형제들 중에도 교수, 법원장, 시인 등이 많다고 한다. 김용은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불합리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여러 번 학교 생활에 위기를 겪었다. 장제스 총통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졸업 후 상하이 대공보에서 국제부 외신 번역기자로 일하다 청운의 꿈을 품고 베이징으로 가서 영어 실력을 살려 공산당 외교부에서 일했으나 공산당 이념과 맞지 않던 그는 다시 홍콩 대공보로 돌아가 기자 생활을 했다. 이 시기 김용의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려 총살당했는데 김용의 팬인 덩샤오핑이 나중에 이 일을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초반 정보요원을 홍콩에 직접 파견에 김용의 소설을 구해오도록 시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신만보 부편집장까지 올라가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이 시기 천원통과 평생지기의 연을 맺는데 그가 바로 무협작가로 유명한 양우생이었다. 양우생과 김용은 신만보에 무협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신만보 외에 홍콩상보 등에서도 소설을 연재하였다. 김용은 1959년 홍콩에서 명보를 창간, 발행인, 사장, 주필을 겸했는데 창간과 함께 연재한 소설이 신조협려이다. 이후 그는 명보에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 등의 대작은 물론 많은 장편과 단편들을 연재했다. 김용의 작품들은 동서양에 수십 개국에 번역되었으며, 대만에서 1천만 부, 중국에서 3억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그는 20세기 중국 대표소설가에 네 번째로 이름을 올렸으며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작가에 바진이나 루쉰 등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이징대학교 명예교수직을 받았으며 김용의 창작실천은 또 하나의 문화대혁명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김용은 옛날부터 문화대혁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학에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과목도 개설되었다.

    녹정기 이후 절필 선언을 한 김용은 이후 자신의 작품을 다듬어 재출간하는데 노력했다. 80이 넘은 나이에 만학을 불태워 케임브리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얻기도 했다. 김용은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이룩한 일도 많은데 무협지에 다 묻혀버린 점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8년 노환으로 사망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중국의 모든 일간지가 그의 사망 소식을 1면에 전했다. 시진핑, 리커창, 원자바오, 주릉지 등 중국의 권력자들을 비롯 중국의 유명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김용은 '동양의 톨킨' , '중국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렸으며 그의 작품은 지정학적, 이념적 장벽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소설들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전 세계에 김용 소설의 독자층이 3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으며 한국에도 그의 소설이 번역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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