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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를 이용한 인체실험의 역사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5. 3. 00:10300x250
사형수를 이용한 인체실험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헤로필루스와 에라지트라투스는 사형수들을 생체해부하였다. 이들은 신경계의 존재를 발견했고 현대까지 내려오는 의학용어와 해부학 구조를 명명하는 등 해부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이들의 연구는 20세기에까지 이어지는 인체실험에 관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이 사형수들을 생체해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왕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프톨레미 왕가는 오직 사형수들에게만 생체해부를 했고, 당시 생체 해부는 의학지식의 획득에 필수적이었으며, 소수 죄인의 희생으로 다수에게 상당한 이득이 된다는 '의학지식의 발전'이라는 대의 하에 이들의 해부를 지원했다.
16세기 이탈리아 의사 그레고리오 카라비타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해독제로 약용 오일을 헌상한 적이 있었다. 당시 불안정한 이탈리아 정세 속에서 독살을 두려워한 클레멘스 7세는 카라비타에게 오일의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지시했고 카라비타는 절도와 살인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코르시카 2명에게 치명적인 독을 먹이고 이후 자신의 오일을 둘 중 한 명에게 먹였다. 실험결과 오일을 먹지 않은 죄수는 죽었지만 오일을 먹은 죄수는 살아남았고 그 보상으로 '종신 노예'로 감형받았다. 이후 로마 교회 소속 의사와 약사들은 해독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형수들에게 카라비타의 오일을 이용한 추가 실험을 실시했고 이후 보고서를 발표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교수형을 당한 사형수들의 시신이 해부학 연구를 위해 제공되었다. 파리의 임상의학파들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장소였던 대형병원에서 진료와 임상연구를 구분하지 않고 여러 실험과 시체부검을 통해 병리학을 발전시켰다. 당시 의학연구자들은 환자 외에도 가난한 이들이나 수용시설에 수감된 사람들에게 세균을 주입하여 경과를 관찰하곤 했다. 충분히 끓인 고기즙을 밀폐한 용기에 담으면 미생물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이탈리아의 라차로 스팔란차니도 일부 연구에서 죄수를 대상으로 소화 과정이나 생리학적 반응을 조사했다.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인체실험은 20세기에 이루어졌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의사들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잔혹한 실험을 했다. 이들은 나치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며 전쟁수행에 필요한 의학지식과 기술을 얻기 위해 세균전, 화학전을 위한 생체실험 외에도 압력, 추위 등 물리적 변화에 따른 인체의 한계를 잔혹하게 실험했다. 일본의 731부대도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등 포로와 사형수를 대상으로 페스트 및 세균전 실험, 동상실험, 마취 없이 장기 적출 실험 등의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다.
이러한 인체실험은 나치와 일본만 한 건 아니었다. 미국도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 연구를 진행하는 비윤리적 실험을 자행했으며 소련 역시 사형수들에게 화학물질 및 생물학적 무기 반응 실험을 수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은 헬싱키 선언과 뉘른베르크 강령 등을 통해 현재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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