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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국민영웅 왕치엔민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3. 19. 22:03300x250

왕치엔민/왕지엔민(王建民). 대만 출신 야구선수중 MLB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뛰며 2006 시즌 19승을 거두어 아시아 선수로 최초의 다승왕 및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기존 기록은 박찬호의 18승이었다)을 깼다. 2006년과 2007년 2년 연속으로 19승을 기록하며 노모의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깰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2009년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워싱턴 내셔널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으로 옮겼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마이너와 독립리그를 전전하다 2016 시즌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계투로 마지막 불꽃을 태운 후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외에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WBC 등 국가대표 경기에서 대만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대만에서의 인기는 절대적으로 국민영웅 반열에 올랐는데 박찬호 전성기의 우리나라보다 더 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모든 등판 경기는 당연히 대만 전역에 생중계되었으며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07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대 최고라고 평가받던 싱커를 주무기로 사용했는데 한 경기에서 던진 103개의 공이 모두 싱커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삼진을 10개나 잡았다.) 슬라이더나 서클 체인지업도 수준급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부상이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는데 투구 중도 아닌 경기 중 주자로 홈 쇄도 중에 당한 발부상으로 양키스에서의 전성기가 끝나버렸으며, 이후에 생긴 어깨 부상도 발쪽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투구를 하다가 생겼다.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재기를 꿈꾸다가 시범경기에서 타구를 잡아 1루 베이스를 밟다가 스텝이 엉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시즌 로스터에서 탈락한 일도 있었다. 그밖에 싱커 위주로 공을 던지다 보니 투수로서의 수명이 짧아졌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있었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추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재기에 성공하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끝까지 전력투구-왕젠민 이야기'도 있다. 웃긴 게 공자 한국인설같이 '한국인들이 왕치엔밍을 한국계라고 한다'는 유언비어가 있다. 정작 본인은 성격이 좋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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