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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성형외과의 아버지 해롤드 길리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8. 9. 22:09300x250
해롤드 길리스. 1882~1960. 뉴질랜드의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현대 성형외과의 아버지. 1차대전때 의사들은 이전의 전투에서 보지 못했던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른 곳은 멀쩡한데 얼굴만 심하게 다친 병사들이었음. 원인은 참호전 때문이었는데,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고개를 잠깐 내미는 순간 적진에서 날아온 총알이 머리를 강타해 머리와 얼굴, 턱을 심하게 다친 것임. 해롤드 길리스는 1차대전당시 영국 왕립 국군 의무대에서 활동함. 이후 프랑스 외과의사이자 파리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히폴리트 모레스틴의 구강 및 악안면 수술에 큰 영향을 받음. 모레스틴이 얼굴에 큰 종양이 있는 환자에게서 종양을 제거하고 피부가 다시 자랄 수 있도록 환자의 턱에서 상처 위로 피부를 이식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영국으로 돌아와 육군 수석 외과의사인 윌리엄 아버스노트 레인을 설득하여 캠브릿지 군사 병원에 안면 부상 병동을 설치함. 이후 전선에서 얼굴을 다친 부상병들은 "앨더샷, 캠브리지 병원"이란 꼬리표를 달고 이곳으로 수송되었음.
하지만 12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던 솜 전투가 벌어지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겼고, 더 많은 참전용사들을 위한 얼굴 재건 전문 병원을 설립함. 이곳에서 길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많은 성형 수술 기술들을 개발했고 5천명 이상의 남성(주로 총상 환자들이었다 함)들에게 11,000회 이상의 수술을 실시했다고 함. 해롤드 길리스가 개발한 기술은 피부 이식을 포함한 현대 재건 수술과 성형 수술의 선두자가 되었으며, 환자들은 처음으로 의사들이 만들어 줄 코나 턱을 고를 수 있었다고 함. 많은 병사들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길리스는 이 공로로 길리스는 1930년 기사 작위를 받았음. 2차대전때는 전선에 직접 나가지 않고 보건부, RAF 및 해군성의 자문으로 활동하며 영국의 여러 지역에 성형 외과를 설립하였고 많은 성형 외과 의사들을 길러냄.
이 때 길리스의 뒤를 이어 길리스의 사촌인 아치볼드 매킨도가 '화상'환자들의 재건 성형 수술을 시작함. 당시 2차대전 항공전에서 영국의 주력 전투기들은 허리케인이나 스핏파이어였는데 이 전투기들은 연료통이 프로펠러와 조종석 사이에 있어서 이곳이 공격받으면 화재가 나고 조종석이 금새 불바다가 되어 조종사들은 좁은 조종석 안에서 끔찍한 화상을 입을 수 밖에 없음. (이런 화상들을 전투기의 이름을 따서 '허리케인 화상' 이라고 불렀다고 함) 매킨도는 이러한 화상 환자들의 피부 재건 수술을 실시하였음. 다시 길리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유명한 길리스였지만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저축이 충분하지 않아 계속 일했다고 하는데, 1946년 로버드 코웰이라는 남성을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집도하면서 이 때 사용한 질 제작(? 재건?) 기술이 향후 40년동안이나 표준이 된 플랩 기법임. 2019년 해롤드 길리스 경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저택이 1600만 파운드(약 235억)에 팔렸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함.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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