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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8. 9. 22:07300x250
임오군란. 고종 19년인 1882년 7월 3일. 구식 군대가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항의하면서 일으킨 군란 사건임. 조선 왕조가 멸망의 길을 걷는 본격적인 시작점이기도 하다. 당시 조정은 별기군에만 신경써서 구식 군인들은 차별 대우를 받았고 급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고종은 아들 순종의 혼수품을 장만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지출하였다. 1882년 선혜청에 전라도의 조미가 도착하여 구식 군인들에게 13개월동안 밀렸던 급료를 지급하게 되었는데 실제 밀린 급여의 반밖에 안되는 양에 썩은 쌀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다. 이에 군인들이 항의하자 담당자는 '받기 싫으면 꺼져라'는 식으로 군인들을 모욕하였고 이에 화가 난 군인들의 분노가 폭팔하여 선혜청 관리들을 구타하였고 기물을 파손하였다. 그러나 이를 파악한 조정은 무능하게 대처를 하게 되었고 군란은 격화되어 의금부 습격, 민씨 일가 습격, 일본 공사관 습격에 이어 민씨 일파를 처단하겠다며 궁궐로 진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겸호, 김보현 등이 살해되었으며, 대원군의 형이었던 흥인군도 살해당했다.
사태가 커지자 봉기를 일으킨 군민들이 왕실의 큰어른인 흥선대원군에게 일 처리를 부탁하였고, 고종도 사태 수습을 위해 흥선대원군의 입궐을 요청하게 되었고 섭정 통치를 맡게 된 대원군이 이들을 달래어 해산시켜 귀가시켰다. 이후 대원군은 민씨 지지자들을 모두 파면하면서 귀양보내거나 처벌했고 군인들의 밀린 급료를 지급하고 구식 군대의 우대를 강화하였다. 또한 실종된 중전 민씨를 '사망'으로 공식 선포하여 중전에 대한 국상을 선포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은 청나라 군대의 파병과 진압, 갑신정변, 동학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조약, 경술국치 등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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