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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때 실전에 투입된 원숭이 부대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8. 1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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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임진왜란 당시 평양, 행주산성 전투와 함께 육상에서 거둔 삼대첩(三大捷)으로 꼽히는 소사 전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중에 원숭이 기마부대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명나라의 양호가 원숭이 기병 수백 마리를 데리고 소사하 다리 아래 들판이 끝나는 곳에 매복하게 했다가 말에 채찍을 가하며 적진으로 돌격했고,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 보게 되자 사람인 듯 하면서도 사람이 아닌지라 이를 괴이하게 여기다 혼란에 빠져서 대패,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다고 써 있다. 다만 이 택리지는 임진왜란 종전 후 150여년 후에 작성되었고 다른 조선의 문헌이나 명나라, 일본의 사료에선 원숭이 부대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어서 '원숭이 부대'에 대한 이야기는 야사나 설화로 여겨졌다.



    그런데 2018년, 임진왜란에 참전한 인사들이 원숭이 부대의 존재를 기록한 문헌들이 발견되어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가 이 내용들을 취합,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임진왜란 당시 신녕현감으로 전투에 참가한 손기양이 그의 일기에 “유정의 군진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초원(楚猿·원숭이)과 낙타가 있다고 했다. 원숭이는 능히 적진으로 돌진할 수 있고, 낙타는 물건을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라고 썼으며,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도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명나라의 원숭이 부대의 존재가 묘사되었다. 또한 경북 안동의 풍산김씨 문중에 전해오는 '세전서화첩'에는 1599년 2월 명나라의 14만 대군이 본국으로 철군하는 장면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가 있는데 이 그림에 '원병삼백'이란 깃발 아래 유인원 열 두마리가 칼을 들고 행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원숭이 병사 300마리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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