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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다이트 운동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10. 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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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다이트 운동.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에 기계가 노동자들의 일거리를 줄인다는 생각에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 네드 러드라는 사람이 주도해서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실제로는 가상인물, 혹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시작은 양말과 레이스를 만들어 파는 직물 산업이 발달한 노팅엄이었는데, 자본가들이 양말을 짜는 방직기를 수공업자들에게 빌려주고 양말을 만들게 했는데 양말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양말 가격은 더 싸지게 되었으며, 비숙련자도 생산이 가능하다 보니 기술을 배웠어도 실직자가 되거나, 방직기를 들여놓은 사람도 비싼 방직기 임차료에 허덕이게 되었다. 결국 분노한 노동자들이 밤마다 가면을 쓰고 기계를 부수거나 불을 지르기 시작했는데 방직기들이 한 군데 공장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집마다 각각 대여해 놓여 있기 때문에 기계를 부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러다이트 운동은 곧 오크셔, 랭커셔 등 영국 중부와 북부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당시 영국의 산업구조는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상황이었다. 우에서 언급한 방직기의 등장으로 공장주들은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도 저임금에 손쉽게 부려먹을 수 있는 여성과 미성년자를(심지어 5~6세 아이까지) 고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영국은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나와 노동인력이 많다보니 자본가들은 이들을 저임금으로 마구 부려먹었다. 자본가들은 점점 부를 축적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으나 노동자들은 하루 15~16시간을 일해도 푼돈밖에 벌지 못했고 다치면 내쫓기기 일쑤였다. 나폴레옹 전쟁기의 불황으로 실업자와 노숙자의 수 또한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영국은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부유층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주고 투표권이 없는 노동자, 소작농, 도시빈민은 인간 취급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영국의회는 1799년 자본가들의 요구에 따라 '단결 금지법'을 제정해서 노동삼권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집단교섭, 파업 등 일체의 집단행동을 금지했다.


    이렇게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부의 배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점점 하락해가는 상황에서 - 심지어 당시에는 자유방임주의 사상에 의해 사회보장제도 또한 전무했었다 - 이들의 불만은 폭력으로밖에 표출될 수 없었다. 실제 이 당시 러다이트 운동은 대중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바이런 같은 지식인들조차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며 지지를 표했고, 자발적인 후원금도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스펜서 퍼시벌 총리 내각은 군대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주동자들을 모두 처형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러다이트 운동은 끝을 맺게 되었다. 이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시기의 '최초의 노동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나 기계를 부숨으로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고, 실제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이 운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 허용과 단체교섭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소유권을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투표권을 확보하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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