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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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 덴뿌라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10. 8. 00:10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은 극심한 자원 부족에 허덕였다. 특히 석유의 부족이 컸는데 원래 수입의 90%를 의존하던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수입이 금지되었고, 남방작전을 통해 동남아의 석유 생산지들을 손에 넣었지만 전쟁 말기에 다 뺏겨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수뇌부는 '1억 총옥쇄'를 부르짖으며 소나무에서 짜낸 송근유를 비롯하여 유채 기름, 정어리기름 등을 닥치는 대로 짜서 항공유 등으로 사용했다. 특히 오키나와 전투 이후 폐허가 된 오키나와에서는 모빌 덴뿌라(モービル天ぷら)라고 하여 항공기용 엔진오일로 튀겨서 만든 튀김 요리를 해 먹었다고 한다. 그것도 구하기 어려워 잔치나 명절 등에나 먹던 고급 요리였다고 하는데, 먹고 난 뒤에는 구역질,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일어났으며, 채 소화되지 못한 기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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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가제 전술을 도입한 오니시 다키지로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9. 23. 00:10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 일본 해군 소속으로 카미가제 전술을 제안하여 '신풍 특공대의 아버지'(特攻生みの親)로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인텔리 소속으로 일본 해군 제11 비행단의 참모장이었다. 의외로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진주만 공격을 반대한 인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국력의 차이가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 이유. 하지만 이후 상부의 명령에 의해 진주만 공격 계획을 입안하였다. 이후 중장으로 승진하였고 제1 항공함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데로 카미카제를 제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카미카제 전술은 이전부터 있던 전술이었고 처음에는 도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1944년 6월 마리아나 해전에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일본해군항공대가 현재 가진 전력으로는 연합군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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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때 보급이 열악해서 육군의 보급품을 훔쳐간 미해병대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9. 6. 00:20
태평양 전선 초기 미 해병대는 열악한 보급 환경에 놓였다. 특히 총기 부분 보급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M1 개런드가 보급되고 있던 시점에서 해병대 출신의 멜빈 존슨(병기장교 출신이었다)이 개발한 M1941 존슨 소총이 개발되자 해병대는 로터리식 탄창으로 한 번에 10발이 장전된다는 점과 해병대 출신이 개발했다는 점 때문에 이 M1941을 제식 소총으로 사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이 존슨 소총은 굳이 M1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지 않고 안정성 면에서 뒤떨어져(총검을 장착하면 오동작이 일어나거나 작은 부품들이 충격에 잘 떨어져 나가고 더 많은 관리가 필요했음)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해병대 예산이 모자라 해병대는 2차 대전 초기에는 볼트액션식 스프링필드 M1903으로 버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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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들어진 양식 나폴리탄 스파게티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8. 27. 09:20
나폴리탄 스파게티.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의 이름이 붙었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이걸 이탈리아 요리라고 하면 싫어한다. 애초에 나폴리탄이라는 말 자체도 이탈리아어로는 없다고. 근원은 나폴리 지역 사람들이 먹던 토마토소스를 이용한 '스파게티 알라 나폴레타나'였는데,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 미국에서 토마토소스를 구하기 어려워 케첩을 이용해 먹던 것이 간단한 제조법 때문에 (파스타면을 토마토 케첩에 비비기만 하면 되니까) 군용 식단이 되어 통조림화되었다고 한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이탈리아계 군인이 "이건 스파게티가 아니야. 케첩 뿌린 육군 국수지. 이걸 스파게티라고 하는 것은 죽을죄를 짓는 거야"라고 하는 대목도 있다. 일본에서의 나폴리탄 유래는 태평양 전쟁과 연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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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문제가 되는 이유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8. 15. 13:53
야스쿠니 신사. 일본에 있는 신사중 가장 규모가 크다. 5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있어서 벚꽃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 황궁 북쪽에 있는 신사로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외신에는 전쟁 신사(war shrine)라고 불린다. 막부 말기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약 246만 6천 명에 달하는 전사자의 신령이 모셔져 있는데 이들 중 1,048명은 2차 대전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유죄를 받았으며, 특히 이들 중 14명은 A급 전범이었기 때문에 이후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과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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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500명을 투항시킨 가이 가발돈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7. 9. 22:49
가이 가발돈(1926~2006).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던 가이 가발돈은 1944년 6월 미군의 사이판 대공세에서 일본군 1천5백여 명을 혼자 생포함으로써 유명해졌고 이 공로로 미해군 최고 훈장인 '네이비크로스'를 수여받았다. 전쟁영화 '전장이여 영원히'의 실존인물이기도 하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해병대에 입대하여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어렸을 때 일본계 이민자인 나가노 부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컸던 그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했고, 장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적들이 사고력 없는 비인격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야간경계 중에 몰래 자리를 빠져나가 일본군을 항복시켜 데려왔다. 이 일이 계속되자 지휘관은 가발돈에게 새로운 보직을 맡겼는데 밤마다 적의 진지쪽으로 가서 사탕, 음식, 그리고 목소리를 주 무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