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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의 평등권과 바게트의 역사, 그리고 프랑스 빵에 닥친 위기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2. 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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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의 평등권",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품질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다. 무슨 소리인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은 프랑스혁명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분에 따라 먹는 빵의 종류가 달랐는데 단순한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과 계급 구조를 의미했다. 심지어 농부나 평민이 부드러운 흰 빵을 먹으면 신의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기강을 해치는 범죄로 간주했다. 또한 당시 프랑스를 덮쳤던 흉작과 갸벨르라고 하는 악명 높은 소금세(소금이 들어간 모든 식품에 부과하던 간접세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데 일조했으나 종교지도자와 귀족, 고급관리는 감면되거나 면제되었다)로 평민들이 고통받던 시기였으니 생존의 가장 중요한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은 프랑스혁명을 촉진시킨 기폭제 중 하나였다. 실제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폐기된 세금이 소금세였고, 프랑스혁명이 시작된 지 4년 후인 1793년 프랑스 왕정이 무너지자 국민 공회는 "빵의 평등권"을 만들었다. 더 이상 먹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다른 빵을 만들면 안 되고 모두 같은 재료로 만든 같은 크기의 빵을 먹어야 된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이 선언은 만들어지기만 하고 공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의식주 중 식을 담당하는 빵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화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프랑스 빵인 바게트빵도 제빵사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던 빵은 캉파뉴(pain de campagne)라고 하는데 한 가족이 며칠을 먹을 만큼 크고 둥근 모양이었다. 이렇게 큰 빵을 굽기 위해선 제빵사가 오븐 옆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 빵을 굽고 천연 효모를 갈아주어야 하는 고된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제빵 기술자를 보호하기 위해 1920년 저녁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빵을 만들 수 없다며 빵 만드는 시간을 법으로 정했고, 그래서 새벽에 빠르게 구울 수 있도록 빵의 모양을 기존의 둥글고 큰 모양에서 가늘고 긴 모양으로 만든 것이 현대의 바게트라고 한다. 물론 바게트 모양의 빵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이때 본격적으로 널리 퍼져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 되었다.

     

    이렇게 프랑스 국민의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 된 빵은 2022년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밀가루와 우유, 설탕 등 주재료들의 가격이 상승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전기료까지 폭등하면서 프랑스 빵집들이 더 이상 저렴한 빵 가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가정용 전기 요금 인상률에는 상한선을 둔 반면, 사업용 전기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오븐 등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빵업계는 전기세 폭탄을 맞아 어떤 빵집은 전기 요금이 지난해보다 열 배 넘게 뛰면서 폐업을 하기도 했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빵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무턱대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코너에 몰린 제빵업자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빵사 대표들을 엘리제궁으로 초청, "바게트는 단순히 물과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상의 기법이 깃들어 있는 빵"이라며 전기세 재조정 등을 통한 구제 대책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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