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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사관과 민인생 일화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8. 27. 00:10300x250
민인생. 조선 초기의 사관.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관 중 하나이다. 태종 1년 임금이 매사냥을 나갔을 때 몰래 변장을 하고 임금의 사냥을 따라갔다. 태종이 나중에야 민인생이 따라온 것을 알아차렸는데 무엇 때문에 사냥터까지 따라왔냐 묻자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따라왔다'라고 실토했다. 태종이 화를 내려 하자 이숙번이 사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니 한번 봐주라고 만류하여 무사할 수 있었다.
민인생은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편전에까지 도승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태종이 여기까지 왜 들어왔냐고 묻자 민인생은 "비록 편전이라 해도 대신이 일을 아뢰는 것과 경연에서 강론하는 것을 신 등이 만일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갖추어 기록하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 태종이 이곳 편전은 내가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맞다고 하자 민인생은 물러나지 않고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민인생은 태종의 분노게이지를 넘겨버렸다. 어느날 임금이 자신의 쉼터였던 편전에서 정사를 보고 있는데 문밖에서 누군가가 임금을 엿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저건 뭐 하는 인간이냐?"라고 물었다.(실록에 그대로 적힌 내용임) 민인생임을 확인하자 태종은 드디어 폭발, 민인생을 '예를 갖추지 않고 엿들었다'는 죄목으로 귀양 보내버렸다. 민인생은 유배를 가기 전까지 '상께서 사관 민인생을 귀양 보내라 지시하시다'를 적고 유배지로 갔다. 이후 민인생은 귀양에서 풀려서 다시 지방관으로 등용되나 부임지에 기생을 데리고 가다 도백(관찰사)의 탄핵을 받았다.
민인생의 트라우마는 태종에게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민인생을 귀양보내고 몇 년 후 태종은 사냥하러 가서 노루를 쫓다가 말에 떨어졌는데 처음 한 말이 "사관에게 발설하지 말라" 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사관의 귀로 들어갔고 사관에 의해 실록에 남게 되었다.
다른 왕들도 사관을 불편해 했다. 정종은 격구를 좋아했는데, 궁에서 격구 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나자 정종은 격구에 끼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사관들이 이를 기록할까 두려워서 옆에 있던 사관 이경생에게 "격구 하는 일 같은 것도 사책에 쓰는가?"라고 불었다. 이경생은 “임금의 거동을 반드시 쓰는데 하물며 격구 하는 것을 쓰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세종은 친형인 양녕대군이 서울에 머무는 것에 대해 상소가 빗발치자, 이를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이 때 안숭선과 정갑손 등이 이 상소를 불태워도 사관이 이를 모두 쓰게 되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라고 말리자 명령을 거두어들였다.
중종때에는 궐 안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기록하기 위해 여자 사관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적이 있다. 실제 여자 사관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궐 안에서 사관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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