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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진짜 우리 전통 소주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2. 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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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의 주사거배

     

    우리나라는 원래 조상들은 귀족의 경우 청주(혹은 약주), 일반 백성들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가 고려 말 몽골의 영향으로 이들이 먹던 소주가 들어오면서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이 먹는 소주는 막걸리의 원료인 '밑술'을 증류해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각 집안마다 고유하게 담가 먹던 가양주들이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과 집안마다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술이 유명세를 치렀다고 하는데 그렇게 빚어진 술의 종류가 1500여 가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꽃피웠던 가양주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씨가 말랐다. 일제는 우리 쌀을 수탈해 가고, 우리 민족에게 술을 팔아 이익을 챙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없애려는 저의도 들어 있었다. 먼저 양곡도매임의금지법을 만들어 쌀을 생산한 생산자가 이를 임의로 처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즉, 술을 만들어 먹지 못하게 했다. 이후 1909년 주세법과 1916년 주세령을 만들어 가양주를 밀주로 전락시켜 그 씨를 말려버렸다. 집에서 만드는 술은 타인에게 팔 수 없으며 가양주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인은 절대 그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이를 어길 경우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었던 10원의 벌금을 매겼다. 남아 있던 가양주 업체들에도 높은 세금을 매겼다. 가양주 제조를 '제한면허제'로 변경하면서 1916년 36만 개소에 이르던 전통 가양주 면허제조장은 1929년 264개소, 1932년 1개소로 줄어들었다.

    일제는 이렇게 우리 민족이 술을 만들어 먹지 못하게 해 놓고 그 대용으로 싼 희석식 소주를 먹게 했다. 각 고을마다 주류 공장을 지정해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 들여온 '주정'이라 불린 에탄올을 술에 섞어 일본식 청주로 둔갑시켜 팔았다. 희석식은 빨리 만들 수 있고 불순물을 없애는 대신 원료가 가진 풍미도 없애기 때문에 원료가 되는 농산물을 좋은 원료로 고집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저렴하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현재의 희석식 소주는 소주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된다. 소주의 한자는 燒酎이다. 燒(불태울 소)에 酎(진한술 주)이다. 酒(술 주) 자가 아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희석식 소주가 들어와 버리면서 酒자가 혼용되다가 현재는 燒酒가 정식 표기가 되어버렸다.

    해방 후에도 전통주의 수난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가양주 제조법의 명맥이 끊어졌다. 1965년에는 먹을 곡식도 부족한 상황이 되자 '양곡보호령'을 선포하여 일본식 청주를 제외한 쌀로 빚은 모든 술을 불법화되었다. 결국 우리의 입맛, 즉 술맛은 대량생산되는 희석식 소주와 맥주 등에 길들여졌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사라졌던 전통소주는 8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80년대 들어 양곡 시장이 호전되었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내놓을 우리 전통의 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국가차원에서 전통주를 지정하기 시작했다. '잊혀진 우리 문화를 부활시키자'는 명목 아래, 전통주제조면허 허가, 전통주 발굴 및 무형문화재 지정 등 일제에 의해 끊어진 전통주의 맥을 복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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