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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학의 아버지지만 징세 비리로 처형당한 라부아지에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1. 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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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투안 라부아지에. 프랑스의 과학자. 근대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화학을 연금술과 구별하여 독립적인 학문으로 만든 사실상 '화학'이란 학문을 창시했다고 평가받는다.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로 11세 법학 대학 입학한 천재였으나 화학, 식물학, 지질학, 우주과학에 더 관심이 많아서 24세때 최연소 나이로 과학아카데미 보조 화학자로 임명되었다. 

     

    라부아지에는 아리스토텔레스때부터 믿어 의심치 않던 물,불,흙,공기가 물질을 구성하는 4개의 원소라는 4원소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물질이 불에 타는 것은 물질 안에 있는 플로지스톤 성분이 빠져나가면서 불로 방출된다로 믿어져 왔던 플로지스톤설도 무너뜨렸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그였다. 그밖에 원소의 정의를 수정했고, 베르톨레와 프르크루아의 도움으로 '화학 명명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밖에 최초의 화학 교과서를 출간했고 학술지를 창간했다. 미터법을 통과시킨 공로도 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른 직업인 징세청부업자로 일하면서 부정부패를 너무 심하게 저질러서 공포정치 시기에 결국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

    그는 1년에 왠만한 귀족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그가 파리를 드나드는 통행세를 징수하던 인물이어서 특히 많은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그는 언제나 검소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실험실을 만들거나 실험을 하는데 (다이아몬드를 태우면 탄소가 남는다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1794년 기요틴에서 목이 잘려 죽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수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그의 머리를 베어버리기에는 일순간으로 족하지만, 똑같은 머리를 다시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라고 애통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죄가 너무 명백해서 나중에 복권되지 못했다. 

     

    그의 연구결과와 기록 등은 사후 그의 부인이 정리해서 발표되었는데 라부아지에의 업적이 알려진 것은 그의 아내의 역할이 매우 컸다. 사실 라부아지에와 비슷한 시기, 심지어 질량보존의 법칙 같은 것은 그보다 빨리 주장한 과학자도 있었지만 라부아지에가 체계적인 학문으로 도식했고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이 회자되면서 라부아지에의 공로가 되어 버린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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