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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3.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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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이후 중앙청이란 이름으로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과천정부청사가 완공되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국민들은 일제 잔재라는 사실조차 잊혀질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1993년부터 철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국민의 70%가 지지했지만 사료적 가치 때문에 학계에서는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1995년 삼일절날 정부는 옛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 철거를 선포하고, 그 해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권위를 상징했던 중앙돔 상단 첨탑의 철거를 시작하면서 철거를 진행한다. 이후 철거가 시작된 조선총독부 청사는 다음 해 완전히 철거되어 조선총독부에 가려졌던 경복궁과 북악산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지을 때부터 일제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건설했다. 특히 민족의 정기를 억누르는 역할을 고려했다는 증거들이 건물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단 크기가 경복궁에 있는 모든 궁을 가릴 정도로 큰데, 백성이 임금이 있었던 궁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 악랄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건물 구조는 일본을 상징하는 날 일(日) 자 모양이며, 내부 기둥에는 일본 국화의 연꽃무늬인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일본의 신궁을 정면으로 배알 하기 위해 경복궁 중심축을 3.5도 틀어 만들었다. 지하에는 고문실이 발견되었는데 좁은 방들은 15cm 두꺼운 철문이 달려 있었는데 철문 안에 모래를 넣어 방음을 하여 비명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철거 이야기가 있었지만 대일 외교관계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일제 치하 잔재를 청산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철거가 추진되었다. 철거 이야기가 나오자 일본 언론들은 연일 반대 의견을 쏟아내었으며, 철거가 결정되자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기도 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청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복구하면 복구비를 자신들이 부담하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정부에서 거절했다. 떼어낸 첨탑은 독립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겨 박물관의 해가 지는 서쪽 5m의 땅을 파고 그 아래에 전시를 하고 있다. 5m 아래의 공간에 매장한 것은 일제 식민잔재의 청산과 극복이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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