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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J. 심슨 살인사건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4. 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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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6월 미국 미식축구 NCAA와 NFL에서 최고의 러닝백으로 활약했던 O.J. 심슨이 전처 니콜 브라운과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론 골드만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처음 경찰은 심슨에게 12일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서 그를 출두하라고 했지만 심슨은 장례식이 끝난 후 참석하겠다고 한 후 '나는 관련이 없다'라는 편지만 남긴 채 잠적했다. 이후 LA 경찰은 19일 도주하던 심슨을 체포했는데 이때 일어난 도주극은 무러 9,500만 명이 시청했으며 NBA 파이널 중계를 중단시킬 정도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재판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재판'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으며 선고 장면을 시청한 사람만 1억 5천만명에 달했다. 언론들 역시 당시 발생했던 오클라호마 시티 테러사건보다도 더 많은 뉴스를 쏟아내었다. 심슨은 수백만 달러(최소 300만~최대 600만)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는데 워낙 쟁쟁한 사람들로 모아서 '드림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 재판은 심슨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사건현장에 있던 많은 증거와 증언, 정황 등이 심슨을 범인이라고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미 심슨은 전처에 대한 상습적 폭행으로 고발된 적이 있었으며 사건 현장과 심슨의 집과 차에서 여러 혈흔, 아프로 머리카락, DNA, 장갑, 발자국 등이 발견되었다. 모두 심슨의 죄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들이었다. 이대로라면 심슨의 유죄는 확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변호인단들은 이 증거들을 하나씩 반박해 나갔다. 당시 DNA 검출 기술이 믿기 어려운 점과 더불어 경찰의 허술한 증거 수집과 보관 방식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덧신을 신지도 않고 맨손으로 증거를 수집했다. DNA 대조를 위해 심슨의 혈액을 채취했는데 이중 90%인 150mg이 사라졌는데 증거로 제출된 '사건현장에서 채취한' 심슨의 혈액에 경찰에서 사용하는 혈액보존제가 섞인 것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건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사라진 혈액의 행방에 답변하지 못했고 채취된 혈액을 사건 현장으로 가져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피해자들의 사체를 피해자의 집에 있던 이불을 갖다 덮어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불에 묻어 있던 심슨의 DNA가 사체로 옮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도 입증되었다. 피살자의 시체를 깨끗하게 씻어서 보관한 일도 있었다. 피 묻은 양말도 경찰이 주장한 범죄방식을 따른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패턴의 혈흔이었다.

    심지어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은 피에 묻은 장갑은 1차 수색때는 안 보이다가 2차 수색 때 카펫 한가운데에 떡하니 나타났는데, 정작 결정적인 증거라고 여겨졌던 이 장갑이 심슨의 손에 안 맞았다. 장갑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심슨은 재판정에서 실제 장갑을 껴 봤는데 이 재판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이었다. 심슨의 변호인단은 가장 유력한 증거였던 장갑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심슨이 범인일 수 있냐고 주장했고 그 과정에서 "맞지 않으면 무죄이다."(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인종차별 문제도 제기되었다. 변호인단들은 이 사건이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배심원들이 이미 사건을 접하고 선입견에 빠졌다며 배심원들을 계속해서 교체했다. 특히 당시 LA는 흑인들이 경찰들에게 인종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 중 하나였고 LA폭동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마크 퍼먼은 인종차별 성향이 매우 짙은 인물이었다. 자신은 흑인을 비하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나 '니거'라는 단어를 수없이 많이 사용한 인터뷰 녹음이 공개되어 위증 논란에 휩싸였고, 해당 인터뷰에서 '흑인 관련 사건에서는 증거를 억지로 꾸며내 흑인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건 정의 구현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퍼먼은 법정에서 해당 녹음의 진위여부, 결정적 증거였던 장갑을 범죄현장에 가져다 놓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결국 1995년 10월 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며 피고인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영미법 체계에서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심슨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되었다. 판결 직후 차석검사 크리스 달든은 경찰과 검찰의 실수가 너무 많았다고 증거 인정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음을 인정했다. 수석검사였던 마샤 레이첼 클라크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검찰에서 퇴직했는데 그 이전까지 살인 사건 승소율 100%를 자랑하던 에이스였다. 

    재미있는 것은 심슨은 1997년 피해자 니콜과 론 골드만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는 패소하여 배상금으로 3,350만 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민사와 형사 재판 결과가 달라진 것은 형사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만 유죄가 되기 때문이다. 민사에서는 '심슨이 아내를 죽였다는게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친 않지만 그래도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는 높다'라고 판단했다. 심슨의 변호인단들은 이후 유명세를 타며 승승장구했지만 정작 심슨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사건과 관련한 책들을 펴내고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2024년 4월 10일 전립선암으로 사망하였다. 퇴직한 수석검사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마크 퍼먼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혔고, 당시 LAPD의 높은 직책에 있었던 판사의 아내를 "한낱 계집 따위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라며 모독한 사실이 드러나 해고되었다. 하지만 이후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라디오 쇼를 진행하는가 하면 폭스 채널의 범죄 관련 패널로 성공했다.

    언론들은 심슨이 잡힌 시점부터 심슨이 유죄라는 가정 하에서 보도를 했는데 심지어 방송사에서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증언조작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방송사에서 '심슨을 범죄 현장 근처에서 목겼했다'는 목격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심슨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방송사에서 돈을 받고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심슨에게 칼을 팔았다'라고 증언한 사람도 나왔는데 이 사람 역시 신문사에서 12,000달러를 주고 그런 발언을 하라고 시킨 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진짜 범인은 미궁에 빠졌다. '감방에 있던 수감 동기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으며 심슨이 글렌 로저스라는 연쇄살인범에게 청부해서 살인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최고의 범의학자였으며 재판의 증인으로도 참석했던 헨리 리 박사는 나중에 O.J.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이 진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제이슨은 분노조절장애가 있었고 이전에도 수 차례 폭력 사건을 일으켰으며 그녀의 여자친구를 폭행해 죽일뻔한 적도 있었다. 당시 사건현장에 심슨의 것이 아닌 다른 신발자국과 모자 등이 있었으며(하지만 LAPD의 무능한 증거 처리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제이슨이 피해자들을 죽이고 심슨이 그 장면을 보고 말렸다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심슨의 친자이므로), 혈흔, 아프로 머리카락 모두가 들어맞는다. 무엇보다 제이슨과 니콜은 사이가 무척 나빴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 심슨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다른 모든 가족들이 기뻐했지만 유독 제이슨만 무표정한 표정으로 있었다는 점도 회자되었다. 재판 내내 심슨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면서도 다른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하지 않은 것 역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앞뒤가 맞는다. 수사단 내부에서도 제이슨이 진범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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