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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1세의 파란만장한 결혼기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4. 5. 18. 00:20300x250
윌리엄 1세는 현 영국 왕가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고 '정복왕'이라고도 불린 역사적인 인물이다.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로베로 1세의 유일한 아들이었지만 서자(사생아) 출신이라 많은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 부하들의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반란이 진압된 후 윌리엄의 공작위 계승을 지지하던 숙부(루앙의 대주교)가 불안정한 조카의 지위 안정을 위해 괜찮은 혼처를 찾았고 마침 플랑드르 백작의 딸인 마틸다가 결혼 상대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구혼하게 되었다. 플랑드르 백작은 프랑스 내 매우 명망 있는 귀족가였고 마틸다의 어머니는 프랑스의 공주였으니 신분만으로 따지면 더할 나위 없는 상대였다. 하여간 윌리엄의 구혼을 받은 마틸다는 '나는 사를르마뉴의 후손이며 프랑스 국왕의 외손녀인데 노르망디 공작은 고작 사생아면서 감히 나한테 청혼을 해?' 라며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윌리엄은 격노하여 현재 거리로 500km 가까운 거리의 마틸다의 집까지 단기필마로 달려갔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갈리는데 마틸다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그녀를 보자마자 밖으로 끌고 나와 자신을 모욕한 그녀를 채찍으로 때렸다는 설과 밖에서 교회를 가던 길의 마틸다를 만나자마자 그녀의 양갈래머리를 잡아채서 말에서 내동댕이쳐버렸다는 설이 있다. 하여간 윌리엄이 마틸다를 붙잡아 현피를 뜬 건 사실인 듯 하다. 하여간 딸이 그렇게 모욕을 당하자 마틸다의 아버지인 플랑드르 백작은 윌리엄을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마틸다가 "윌리엄이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선언을 해 버렸다.(나에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마틸다가 왜 윌리엄과 결혼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다움에 반했던지, 자기 보고 서자라고 했다고 이렇게 화낼 정도면 앞으로 다른 여자 사이에서 서자는 안 만들겠다고 생각했는지, 노르망디공과 결혼해서 다음을 얻겠다는 정치적 속셈인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플랑드르 백작은 딸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고 둘은 4년 후 결혼에 골인했다.그 과정에서 교회에서는 '윌리엄의 할머니의 외할아버지와 마틸다의 어머니의 외할머니가 남매"라는 이유로 둘이 근친이라며 결혼을 반대했다. 사실 그 당시 귀족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촌과 결혼하는 일도 있었던 만큼 어떻게 보면 어거지 이유라고도 볼 수 있는데 교회가 그렇게 반대한 이유는 윌리엄이 서자라고 우습게 보인 면도 있었지만 노르망디 공작가와 플랑드르 백작가가 사돈을 맺게 되어 힘이 너무 세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정적들이 교황 레온 9세에게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각자의 재산으로 성당 한 채씩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교회의 허락을 받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후 둘의 금술은 참 좋았다고 한다. 윌리엄은 9명의 자식을 두면서 다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지 않았고, 마틸다도 남편이 원정 나갈 때면 노르망디를 대신해서 잘 다스리면서 자녀들 교육에도 힘썼고, 윌리엄에게 '모라'라는 배를 선물했는데 이는 영국 원정에 나선 윌리엄의 기함이 되었다. 이후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점령하여 "정복왕"의 칭호를 얻게 되고 마틸다는 영국 여왕이 되었다. 여담으로 노르망디에서 나고 자라서 프랑스어만 쓸 줄 알고 영어를 하나도 못썼던 윌리엄과 프랑스 귀족이자 왕실 핏줄인 마틸다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자 그의 봉신들도 잉글랜드의 귀족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왕족과 귀족은 프랑스어를, 평민과 농노들은 영어를 쓰는 이중언어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프랑스어가 영어단어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마틸다가 먼저 죽었는데 마틸다 사망 이후 윌리엄이 정신이 나가 폭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복자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점령한 이후 기존 앵글로섹슨계 영국인의 지도계급화를 막았고, 잉글랜드인들은 헨리 4세때에 되어서야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을 자신들의 왕으로 갖게 되었음. 그때까지 프랑스어는 지배계급의 언어, 영어는 피지배계급의 언어였음. (라틴어는 학자와 교회의 언어) 그러나 영국에 거주하는 귀족들이 영어를 쓰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 자식들도 영어를 같이 쓰게 되면서 귀족 중에서도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고, 흑사병의 창궐로 영국 인구의 1/3이 사망하면서 수많은 교사와 학자가 사망하여 학교에서는 프랑스어와 라틴어 대신 영어를 이용하여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기술을 가진 장인이나 공인 같은 중류계급의 신분상승이 일어나면서 영어의 위상이 높아졌음. 또한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영지를 잃게 되고 영국으로 철수한 귀족 역시 더 이상 프랑스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졌음. 결국 에드워드 3세 때 변호법이 공표되어 모든 소송은 영어로 하게 되었고, 헨리 4세가 왕위를 뺏고 영어로 된 연설을 하면서부터 영어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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