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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덕여왕은 사실 암군이었다?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2.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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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전이나 드라마로 자주 접해서 성군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선덕여왕의 치세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암군이라고까지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후 신라는 계속된 패전으로 대야성을 포함하여 최소 44개, 최대 52개의 성을 잃었다. 숭불정책으로 불교를 부흥시켰다고는 하나 불교를 통해 국가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목적도 실패했으며 오히려 대규모 토목공사로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아서 비담의 난 등의 반란이 일어났다. 여왕이라는 점 또한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나라에서 '신라는 여자가 왕위에 있어서 남들이 우습게 본다.', '당나라 황실 종친을 보내 신라 왕위에 오르게 하면 어떻겠느냐'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선덕여왕이 불교에 빠진 것 역시 정치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 회피와 도피의 수단이 아니었냐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당시 신라의 대내외적인 정치상황 역시 선덕여왕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꽤나 나이가 많을 때 올랐다. 즉위 당시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실 선덕여왕이 취임했던 시기는 대내외적으로 명실상부한 신라의 위기상황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다른 나라에서도 여자가 왕위에 올랐다고 무시했고 내부에서도 귀족들의 지속적인 견제와 반란에 시달려야만 했다.

    선덕여왕 시절에 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도 분명 있었다. 인재를 보는 눈이 있어서 김춘추나 김유신으로 대표되는 삼국통일의 주역들 본인이나 집안들 중에 선덕여왕 집권기 때 등용된 경우가 많았으며, 결과론적으로 왕권 강화의 기반이 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의 기회를 잡게 될 수 있었다. 비담의 난이 있긴 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대귀족을 꺾고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해서 고구려나 백제가 말기에 겪어야 했던 지배층의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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