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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에 약탈물품이? 오타니 컬렉션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5. 9. 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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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니 고즈이. 일본의 승려, 고고학자. 탐험가. 작위는 백작이었다.  

    일본 정토진종 혼간지파의 본산인 니시혼간지의 22대 세습 문주였다. 영국 런던 유학을 계기로 영국왕립지리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경로와 불교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여러 차례 탐험했다. 1902년부터 1914년까지 총 3차례 탐험했고 이 과정에서 수집한 문화재는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불렸다.  

    오타니 고즈이는 주로 삼장법사의 여행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원과 티베트 고산지대, 실크로드, 둔황, 신장 위구르 등을 탐험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많은 유물을 수집, 반출, 약탈했다. 값을 치른 구입품도 있지만 발굴이라는 미명 하에 무단 반출한 약탈품의 수가 상당하며 구입한 물품도 현지인을 꼬드겨 헐값에 넘겨받았다고 한다. 현재 오타니 컬렉션은 대략적인 수는 약 5천여 점으로 추정되나 그 수와 목록이 명확하지 않은데 '마구잡이 약탈'을 하는 과정에서 상세한 보고서는커녕 발굴품들의 출처나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넉넉한 집안의 돈으로 자기 취미인 탐험과 발굴(이라 쓰고 약탈이라 읽는다)을 마음껏 하던 오타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이 발목을 잡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시 오타니와 교단은 자금난에 빠져 있었다. 오타니가 10여년간 쓴 탐험비용이 교토 시의 1년 예산에 해당될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니시혼간지의 승려 5명이 교단 부속의 재단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감되었다. 오타니는 결국 책임을 지고 문주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과 중국, 한국 등지의 여러 기관과 개인에게 흩어졌다. 오타니는 자신의 컬렉션의 1/3 정도는 당시 광산재벌 쿠하라 후사노스케에게 판매하여 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후 쿠하라는 자신이 구매한 오타니 컬렉션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에게 바쳤다. 둘은 같은 번(현재 야마구치현) 출신이었고 평안남도에 설립한 제련소의 운영에 편의를 받기 위한 목적의 상납이었다고 한다. 이 오타니 컬렉션은 총독부박물관에 전시가 되었다가 광복 이후 한국 정부가 접수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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