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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 대기근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6. 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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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대기근.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아일랜드 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아일랜드 감자기근이라고도 한다. 당시 유럽 전역에 감자역병이 대유행했는데 당시 아일랜드인인 감자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피해가 컸다. 아일랜드인이 감자를 주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국인 지주들이 아일랜드인을 소작인으로 부리면서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은 모두 영국으로 수탈해 가고 아일랜드인은 감자밖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영국인 지주들은 감자대기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대를 이용해서 아일랜드인을 내쫓고 곡물을 수탈해서 아일랜드인들은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기근이 퍼지자 미국과 영국에서 밀을 공급하고 밀의 수입을 자유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마련하였지만 이미 감자농사를 망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들어올 수 있는 곡물의 양도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껏 들어온 곡물도 운송수단의 부족으로 항구도시와 그 인근 지역에만 유통되거나 창고에서 썩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국은 당시 아일랜드인이 보낸 도움 요청을 묵살했다. 기근 초창기에는 귀리를 싸게 팔고 공공근로를 실시하는 등의 구제책을 시행하여 사망자를 최소화했는데, 이로 인해 영국 본토의 재정부담이 커지고 영국 내 경제상황이 나빠졌다. 그 와중에 정권이 교체되고 휘그당이 집권하자 '자유방임주의적 원칙'에 의거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인프라 개선으로 지원 방향이 바뀌었고 곡물유통업자들이 구호 곡물이 퍼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도 원인이었다. 심지어 영국 내부에서는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아일랜드인을 더 풍요롭게 할 디딤돌'이라거나 심지어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했다. 기근이 심각해지자 휘그당에서도 구호소를 마련하였으나 여기에서도 '구호에 드는 비용은 너네가 직접 마련해라'라면서 지주들에게 떠넘기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아일랜드 구제 법안이 영국 의회에 꾸준히 올라갔으나 상원과 하원에서는 끊임없이 거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아일랜드 농부들을 위해 10,000파운드를 보내겠다고 하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000파운드만 보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는 2,000파운드밖에 내기 않았기 때문. 술탄은 1,000파운드만 보내는 대신 영국 관리들의 저지를 피해 식량을 가득 채운 3척의 배를 몰래 아일랜드로 보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약 100만 명이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고 100만 명이 해외로 이주해서 아일랜드 인구는 20~25% 감소했다. 이후에도 아일랜드인의 해외 이주는 계속 증가하여 1900년대 중반까지 아일랜드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800만 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또한 당시까지 다수로 사용하던 아일랜드어가 영어에 밀려나서 소수어로 전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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