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솥밥은 즉석에서 소량으로 밥을 지을 수 있고, 곱돌(다른 돌보다 무게가 두배라 곱돌이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통 각섬석 또는 활석 계통의 천연 검은색 돌을 지칭한다. 돌솥 외에도 고기 굽는 불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의 특성상 온도가 고르게 유지되므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돌솥을 이용해 돌솥비빔밥을 처음 만든 것은 1960년대 말 전주 비빔밥 골목에 있던 한 비빔밥집(중앙회관이라고 한다)에서 비빔밥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 창안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주곱돌비빔밥'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이후 '돌솥비빔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신세계백화점의 팔도민속전을 통해 서울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곧이어 전국으로 퍼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돌솥밥은 처음에는 사치스러운 음식으로 인식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요식업중앙회에서는 혼분식 정책을 자율 이행하기 위한 실천 사항으로 돌솥밥 판매를 일체 폐지하고 이를 3회 이상 어길 시에는 당국에 고발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쌀 자급률이 90%를 웃돌게 되며 점차 대중화되었다. 현재는 뜨거운 돌솥에 담아 식사 끝까지 뜨겁게 먹는 돌솥비빔밥류와 1~2인분씩 밥을 지으며 대추, 밤, 잣과 함께 육류, 해산물, 채소류 등 재료를 넣어 고급스럽게 짓는 돌솥밥으로 양분되었다. 돌솥을 긁어 먹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누릉지도 일품이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에서 돌솥비빔밥의 원조가 자기라고 하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오사카 재일한국인 거리인 츠루하시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신빙성이 워낙 떨어지고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아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동북 3성(지린성, 랴오닝성 등)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 사회에서 이 조리법이 유입되어 널리 퍼지면서, 현재는 중국 내에서도 인기 있는 외식 메뉴로 자리 잡았는데 중국에서 자국내 조선족들의 문화유산이라며 지린성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돌솥비빔밥은 남북 분단 이후 남한에서 생겨난 음식이고, 조선족들이 돌솥비빔밥을 최초로 접한 시기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이니 중국에서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는건 억지이다. (실제 중국에서도 현재는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지 않고 지린성 내 조선족들의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돌솥은 전북 장수 지역의 곱돌을 최고로 치며, 조선시대부터 귀한 재료로 취급되어 왕실에서 손님을 모실 때 최고급 곱돌을 이용해 밥을 지어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야사에 따르면 조선 숙종 때 금부도지사 최재민이 누명을 쓰고 장수에 귀양살이 와서 넓은 돌에 산짐승을 구워 먹고 그 맛이 너무 좋아 임금님께도 이 고기 맛을 보여드리고자 돌을 잘 갈아 돌구이판이라고 이름 붙여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고기 맛을 본 숙종이 최재민의 죄를 사해주었다고 한다.(근데 벼슬에는 복직하지 못하고 돌을 캐 생계를 유지하게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장수곱돌이 되었다고) 그밖에 여지도서,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사촬요, 세종실록지리리, 대동지지 같은 조선시대 기록에 보면 충청도 충주목에서 곱돌을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