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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콜로세움에서 사자와 싸운 검투사들의 생사는?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6. 10.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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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콜로세움에서 우리가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인상 깊었던 명장면인 인간 vs 맹수의 경기는 실제로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맹수를 사냥하거나 맹수와 싸우는 행사를 베나티오(venatio)라고 불렀는데, 무장한 투사들이 맹수와 맞붙는 경기보다는 사냥꾼이 창이나 다른 무기를 들고 사자나 표범, 곰 등을 사냥하는 맹수 사냥, 그리고 죄수들을 맹수에게 노출시켜 죽이는 죄수의 처형이 더 많았다고 전해진다.

     

    서기 80년 콜로세움 개장 기념으로 로마 황제 티투수가 주최한 100일간의 축제 기간에만 약 9천여 마리의 야수가 죽었다고 하며, 서기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는 다키야 승리를 기념한 행사에서 약 1만 1천 마리의 동물이 죽었다고 한다.(물론 이 수치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검증된 통계는 아니다.) 그밖에 damnatio ad bestias라고 해서 야수에게 넘기는 형벌도 많이 개최되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나 포로를 경기장에 풀어놓은 맹수에게 노출해 처형하는 방식인데, 이를 위해 사자, 표범, 코끼리, 하마, 곰, 뿔소 등 수많은 야수들이 북아프리카와 유럽 전역에서 포획되어 콜로세움으로 들어왔으며, 이 대규모 포획과 도살 때문에 북아프리카 일대의 일부 야생동물 개체 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의외로 콜로세움 경기에서 검투사가 목숨을 잃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실제 목숨을 건 싸움이었고 검과 창, 방패 등을 사용해서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모든 시합이 죽음으로 끝났던 것은 아니다. 검투사는 훈련 비용이 많이 든 값비싼 "자산"이어서, 소유주(라니스타)는 자기 검투사를 쉽게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만일 경기 중에 검투사가 사망하면 경기를 기획한 주최자나 경기 개최자는 소유주에게 살아있을 때의 몇십 배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래서 경기 중에 심판이 있었고, 패배한 검투사가 항복 의사를 보이면 관중이나 경기 주최자가 살려주는 경우도 많았다. 학자들이 역사적 기록과 검투사의 유골, 폼페이의 벽화 등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경기에서 검투사가 사망할 확률은 약 10~20% 수준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럼에도 검투사의 평균 수명은 짧아서 상당수가 20대 중후반에 사망했다.

     

    검투사와 사자간의 경기도 물론 있었다. 실제로 검투사나 사냥꾼들이 맹수와 혈투를 벌이는 쇼는 대중의 인기를 끄는 핵심 콘텐츠였다. 하지만 이 경기들은 동물이 대부분 죽는 것이 정상적인 결말(?)이었다. 행사의 목적 자체가 로마의 힘이 자연과 이국의 땅을 정복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검투사가 방패와 칼을 들고 사자와 1:1로 맞짱을 뜨는 것보다 숙련된 사냥꾼이 원거리에서 창이나 활로 처리하는 식이 많았다. (물론 사냥꾼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경기에 투입된 맹수들은 철저히 일회용 소품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대부분 검투사나 사냥꾼에게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관중의 열광 속에서 다른 맹수와 싸우거나 다른 사냥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로마는 맹수들을 먼 지역에서 포획해 로마까지 운송하고 경기장에 풀어놓는 거대한 동물 공급 체계까지 운영했는데, 아레나 밖으로 다시 살려 보내 관리하는 비용보다 새로 잡거나 공수해 오는 편이 더 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면에서 동물 경기는 로마 제국의 부와 군사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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