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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핀 드 보아르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8. 23. 21:05300x250
조제핀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었다고 함. 조제핀이 유부녀이긴 했지만 돈과 작위가 목적이었던 집안끼리의 결혼이기 떄문에 부부간의 사이는 좋지 못했고 남편은 내연녀를 만들고 사창가를 돌아다녀서 법원이 '남편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둘이 별거해라' 라는 판결을 내릴 정도였음. 조제핀은 프랑스 혁명 당시 투옥되었을 때 사교계 유명인사였던 테레사 발리엥과 친분을 쌓아 사교계에 입성했는데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바라스 총재의 내연녀가 되면서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올라섬. 사교계에서 조제핀을 만난 나폴레옹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조제핀은 나폴레옹에 별 관심이 없었음. 결국 1796년 둘이 결혼했지만 나폴레옹의 일방적인 애정에도 불구 계속 바람을 피움. 사실 나폴레옹이 조제핀의 연이은 바람이 전 유럽에 퍼져 나폴레옹을 비웃자 열받은 나폴레옹은 이혼을 결심했지만 조제핀이 울면서 사과하고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다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던 조제핀의 아이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만류하여 그만둠.
하지만 이때부터 둘의 입장이 바뀌는데 조제핀은 자신의 불륜을 반성하고 정숙한 아내로 살기 시작했지만 나폴레옹은 조제핀에게서 마음이 떠나 유명 여배우나 귀부인을 만나기 시작함. 이후에도 극심한 조제핀의 낭비가 지속되었고 둘 사이에 후사가 생기지 않자 1810년 결국 둘은 이혼함. 자신의 무수한 바람과 냉담함에도 자신을 기다려주는 나폴레옹에게 감동한 조제핀이 진심으로 나폴레옹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정작 나폴레옹은 조제핀에 대한 애정이 식은데다 합법적 후계자를 얻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이혼하게 된 것. 다만 이혼 후에도 나폴레옹은 조제핀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 그가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 줬다고 함. 이혼 후인 1814년 조제핀은 폐렴에 걸려 사망했는데 그녀의 유언은 "보나파르트, 엘바, 로마 왕" 이었다고 함. 나폴레옹은 조제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이틀동안 방에 틀어박혀 괴로워했다고 하며 참고로 1821년 나폴레옹이 세상을 떠날 때 유언이 "프랑스, 군대, 선봉, 조제핀" 이었다고 함.
일각에는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이혼이 나폴레옹 몰락에 일조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실제 조제핀이 나폴레옹의 곁에 있을 때 나폴레옹은 승승장구하여 군인들로부터 "승리의 부인" 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바람을 피우고 낭비벽이 심했지만 반면 선량하고 인정이 많아서 어려운 사람도 많이 도와줘서 인망이 높았다고 함. 무엇보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조제핀은 프랑스 혁명부터 격동의 시기를 함께 헤쳐 온 같은 프랑스인이이었지만 나폴레옹이 재혼한 마리 루이즈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으며 당시 프랑스 인들은 마리 루이즈를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비난했음.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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