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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하는 규율을 만든 양무제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9. 25. 23:20300x250
양무제의 원래 이름은 소연으로 제나라 황제의 먼 친척이었는데, 북위 효문제가 제나라를 침공했을 때, 최전선의 지휘자마저 도주한 상태에서 뛰어난 전략과 용맹으로 북위 군대를 패퇴시켜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고 제나라의 명제도 깊은 신임을 보냈다. 이후 명제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아들인 소보권이 제위에 올랐는데 그는 눈에 거슬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폭군이었고 숱한 대신들의 목을 쳤다. 그 와중에 소연의 형인 소의도 목숨을 잃고 소보권이 소연까지 죽이려 하자 이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소보권의 동생 소보융을 황제로 내세웠다. 이후 소보융에게 제위를 선양받아 황제에 올랐다. 48년간 제위한 양나라 무제의 집권 시작이었다. 38세에 제위에 오른 양무제는 제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치국 이념을 찾았는데,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이 BC 3세기경 덕을 갖추어 세계를 통일하고 정법으로 세상을 다스린 인도의 야육왕이었다. 양무제는 양무제는 제위 2년 후인 504년 중운전에 모인 2만여 국민들 앞에서 불교인의 길을 걷겠다고 세상에 선포했다.
양무제는 궁궐 내에 불상을 안치하고 승려들을 수시로 초청해 법문하였으며, 새벽에는 어김없이 예불을 드렸다. 정사에도 부지런하여 관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법률인 양률을 반포하였다. 인재를 등용하고 조세를 경감했으며, 국학원은 귀천의 차별을 없앴고 오관을 설치해 가난하지만 반듯한 선비들을 초빙해 공자의 학문도 연구토록 했다. 백성들은 양무제를 칭송했고 나라는 태평성대가 되었다. 무제는 또 검약을 몸소 실천했는데 삼베옷을 입고 부들방석에 앉았으며, 짚신을 신고 갈건을 썼다. 공무가 바빠도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했으며 제자백가서와 논어, 효경 등에 주석을 달았고 불경을 번역하도록 했으며 스스로도 불경을 연구해 주석을 달았다. 양무제는 자신의 친불정책이 공격을 받을 것을 예상하여 교단이 부패하고 승려가 존경받지 못하면 제아무리 황제가 옹호해도 소용없다고 판단, 출가자들의 술과 고기를 금하는 '단주육문'을 공표했다.
양무제는 승려들에게 장문의 서한을 보내 "지금의 불제자는 술을 마시고 육식을 즐기면서 죄의 원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의 결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술은 악의 뿌리이고 마군의 위이라고 말해야 하거늘 거꾸로 출가자가 술을 마신다. 출가자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 사람들이 불법을 업신여기게 된다." 라며 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일이 있다면 왕법으로 다스려 문초하고 환속시키겠다고 했다. 양무제는 "오직 허물없는 이라야 남을 책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 깨끗한 이라야 남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며 승려들에게 앞장설 것을 요구했고 스스로도 술과 고기, 음욕을 멀리하기로 했고 죽는 날까지 술과 고기, 여색을 멀리했다. 국가의 제가나 잔치를 여는데 어떤 생명이든 죽이지 않도록 칙령도 내렸으며 의사도 살아있는 생명으로 약을 조제하지 못하게 했다. 사찰 건립을 돕고 재정 지원도 아끼지 않았으며, 형벌을 처할 때에도 감형을 해주거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숭불 이념은 점차 강압이 되었으며 불교에만 신경쓰는 무제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불교에 너무 심취하여 스스로 절에 투신하고, 절의 노예가 된 황제를 신하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찾아오는 일이 여러 번 생겨 국고에 큰 피해를 줬다. 함부로 관직을 설치하고 종친을 지나치게 감싼 점도 문제였다. 마당한 후계자가 없었는데 이는 이후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양무제는 스스로 앞장서고 모범을 보이면 백성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태평성대 시대에 귀족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부패했고 사치향락에 빠졌다. 오랜 평화는 군대의 약화를 불러왔다. 경제는 발전했으나 점점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다. 말년에 양무제가 지나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한 이유도 도저히 당시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댈 곳이 불교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동위의 장군으로 양에 투항했던 후경이 548년 반란을 일으며 그 해 12월 수도 건강이 함락되었고, 후경에게 유폐된 무제는 이듬해 5월 굶어 죽고 말았다. 남조 최고의 전성기를 불러오며 불교문화를 활짝 꽃피웠던 '보살황제'의 마지막이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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