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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에 낙서한 아저씨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11. 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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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진흥왕 비봉에 낙서(?)한 김정희는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년~1856년)가 맞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인데 1816년 그때까지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려져 있던 북한산 비봉의 비를 친구인 김경연과 함께 방문, 비문에 새겨진 68자를 해독하였다. 다음 해에도 조인영과 함께 올라가 비문을 해독, 그 비석이 신라 진흥왕이 새롭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한강 지역을 돌아보고 세운 순수비였음을 밝혀냈다. 북한산 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영토를 넓힌 내용과 북한산을 순수할 때 수행하였던 신하들의 관등 및 관직 등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1줄에 32자씩 12줄에 총 384개의 글자가 해서체로 쓰여 있었는데 신라 시대의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추사의 연구는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때 김정희는 북한산 순수비의 탁본을 떠서 금석과안록에 해석문을 첨부하고 비석의 옆면에 자신이 해석해냈다는 것을 기록했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심각한 문화재 훼손이다.(...) 하지만 후손들은 당시 김정희의 탁본을 토대로 지금은 풍화되어 읽을 수 없는 비석의 글자도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담으로 김정호는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한 후 절친한 친구 권돈인이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자 그에게 진흥왕이 함경남도 황초령 고개에 세워 놓은 순수비인 함초령비(진흥왕때 신라가 함흥평야와 개마고원 일대까지 진출했음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 현재 북한의 국보 제110호이다)를 찾아볼 것을 권유, 권돈인이 비석 일부를 발견하여 관아에 보관하게 된다. 김정호는 이후 1852년 본인이 유배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인 윤정현이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그에게 함초령비의 발굴과 원위치 복원을 부탁하였고, 윤정현은 깨진 순수비 조각을 수습해 합친 후 비각을 세우고 김정희가 써준 현판을 걸었다. (이후 그 동네는 진흥왕에서 이름을 딴 진흥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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