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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김병연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6. 18. 11:06300x250
김삿갓. 본명 김병연. 조선 후기의 선비이자 시인. 호는 김립(金笠), 난고(蘭皐)이나 김삿갓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인생의 대부분을 삿갓을 쓰고 다니며 방랑하고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면 김립(金笠, 삿갓)이라 대답한 대서 유래되었다고 함. 당시 권세가 엄청났던 안동 김씨 일족이었음. 야사에 따르면 그의 나이 16세때 향시를 보게 되었는데 문제가 '홍경래의 난 때 패전 후 홍경래에게 목슴을 구걸하고 다른 사람의 공적을 억지로 가로채려다 걸려 참수당한 장수 김익순을 논박하라'였음. 김병연은 김익순을 엄청나게 비난하는 답안지를 제출하고 급제했는데 집에 와서 그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것을 알게 됨. 이에 멘붕하여 4년간 집안에 틀여박혀있다 20세때부터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고 함. 물론 여러 다른 설이 있는데 과거가 아닌 글짓기 대회였다는 설, 시짓기 도박을 한 거라는 설, 자기 사촌이 과거급제를 하나 조부가 김익순이라는 이유로 취소되는 걸 보고 '난 출세는 못하겠구나' 라며 유랑생활을 했다는 설도 있음. 당시 조선왕조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홍경래의 난도 사실 안동 김씨 때문에 발생함) 등에 회의를 품고 방랑했다고 보는게 맞을 듯.
김삿갓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팔도 곳곳을 누빔. 어느 곳에서는 잠시 머물며 훈장 일을 하며 후학을 기르고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으며, 뛰어난 글재주를 자랑하였고 재치있는 시를 많이 지었으며 당시 사대부들의 악덕과 부정부패, 사회 폐해를 비판하여 듣는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 주었다고 함. 19세기 중반 김삿갓과 거의 동시대를 산 이우준이라는 인물이 쓴 '몽유야담'이라는 책에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늘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다녔고 언제나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함. 또한 언제나 정처 없이 떠돌았으며 기껏해야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떠났다고 함. 방랑 전에 결혼하여 처자식이 있었으나 10년에 한번 정도 집에 들렀다고 하며 32세때 아내가 죽자 와서 장례를 치루고 얼마 후 재혼했다고 함. 그의 차남이 "그만 여행하고 돌아오시라" 라는 편지를 수십통 써서 아버지가 갈 만한 마을마다 부탁하고 맏겼다고 함. 40대가 되어 집으로 왔으나 그동안 가정에 소흘히 하여 가족들로부터 냉대를 받자 다시 방랑에 나섰고, 57세때 전라도 화순 지역에 지인의 집에서 쓰러져 사망함. 이후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에 묻힘.
이후 김삿갓의 손자인 김영진이란 사람이 절에서 승려로 살았는데 이를 알게 된 임금이 환속시키고 관직을 내려주었다고 함. 이후 양조장을 차려 큰 부자가 되었으나 가난한 이들을 돕다 정작 본인은 다시 가난해져서 다시 승려가 되었다고 함. (이를 기리는 송덕비도 세워짐) 김삿갓이 유명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그를 흉내내며 사칭하였다고도 함. 그가 사망한 곳인 화순 동복면에는 김삿갓로가 있으며, 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강원 영월군에는 김삿갓면이 있음. (공식명칭임.) 평생 방랑하느라 본인의 시집은 편찬되지 못하였고 1930년대 들어서야 이응수라는 사람에 의해 퍼져 있던 그의 시들을 취합한 시집이 발간됨. 1973년 유달영 서울대 농대 교수와 장우석 화백에 의해 그의 친필이 발견되기도 함.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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