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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아 테레지아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2. 12. 2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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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테레지아. 신성 로마 제국 프란츠 1세의 황후.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자 헝가리아 크로아티아의 여왕, 보헤미아의 여왕. 합스부르크 제국의 통치자였다. 카를 6세의 장녀로 결혼 전에는 유럽 최고 왕가의 빼어난 미모로 인기가 매우 많았다.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이 빈에 유학와 있을 때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다. 당시 유럽의 왕가는 정략결혼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기 드문 연애결혼이었지만, 100% 연애결혼은 아니고 프란츠를 합스부르크 가문에 장가 보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긴 했다. 부부간 금술이 매우 좋아서 5남 11녀의 자손을 낳았는데 아이를 많이 낳아서 다른 유럽 왕가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자녀 중 하나가 프랑스로 시집가 죽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물론 프란츠 슈테판이 바람기가 있어서 염문이 좀 있긴 했지만 프란츠 슈테판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존심 강한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그녀를 언제나 존중했고 그녀 역시 국사를 제외한 부분에 있어서는 남편의 의견을 따랐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사석인 자리에서는 둘은 평범한 부부처럼 소박하고 화목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남편이 뇌졸증으로 급사한 후 큰 충격을 받은 마리아 테레지아는 궁전에 남편을 위한 방을 만들고 이후로는 내내 상복만 입으며 남은 평생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식욕으로 풀면서 급속도로 살이 찌기 시작했고, 원래 성격도 유쾌하고 강한 성격에서 비관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했다고 한다.

    군주로서는 성군으로서의 평가를 받는다. 뛰어난 능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가문과 영토를 공고히 하였으며 제위중의 치세도 좋은 편이었다. 오스트리아 신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으며 살아있을때도 '국모'칭호를 받았다. 국가 운영 시스템을 근대적으로 정비했고 국가의 기본 정책 방향을 점진적인 개혁과 관용으로 잡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가 안정을 유지할 기틀을 마련했다. 의무교육과 징병제를 도입하였고 행정과 사법을 분리했고 테레지아 법전을 편찬했다. 조세 제도를 정비했으며 실업학교, 사법학교, 의대 등을 설립했다.

    다만 부정적 평가도 있는데 본인은 카리스마 만땅의 여왕이었으면서 '모든 여성은 정숙하고 남편을 잘 따라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런 가치관은 딸들과도 트러블이 생기게 된 이유였다. 특히 매춘부들을 싫어해서 여성의 술집과 여관 취직을 금지시켰고, 여성은 밤길을 다닐 수 없게 통금령을 내렸으며, 통금령을 어기는 여성은 매질을 가하고 삭발시켰다. 매춘부를 혐오해서 감화원이라는데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 강제수용시키기도 했다. 자유주의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불순 사상이라고 생각하여 보수 정책으로 희귀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전비가 소모되어 오스트리아 경제를 휘청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 입장에선 동시대에 프리드리히 2세가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7년 전쟁도 상대가 프리드리히 대제가 아니었다면 이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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