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두대(기요틴)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1. 26. 23:00300x250
기요틴(영어 표기로 길로틴)이 만들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사형수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서였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칼 또는 도끼로 목을 자르는 참수형은 물론 화형, 참시형(마차 바퀴 또는 말이나 소에 묶어 당겨서 찢어 죽이는 형), 교수형 등 다양한 처형 방법이 있었다. 그 중 고통이 덜했던 참수형은 귀족들이 당하던 형벌이었다. (당시엔 참수형을 집행할 때 돈 많은 귀족들이 사형집행인에게 '잘 잘라 달라'며 뇌물을 주거나 아예 실력있는 사형 집행인을 고용했다고 한다). 중세시대의 영향으로 냉병기에 목이 베이는 것은 고귀한 죽음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같은 죄에는 같은 벌을 줘야 한다. 돈이 많아서 편한 형을 받으면 안된다.'는 여론과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인도적인 사형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기 때문에 도입된게 단두대였다. 실제로 단두대가 도입될 당시 반대 의견 중 하나는 '기요틴으로 처형하면 죄인이 고통을 덜 받는다' 였다.
단두대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이란 이름이 붙었고 그도 기요틴에 목이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제프이냐스 기요텡 박사는 '같은 죄를 지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사형수라도 고통없는 죽음을 가질 권리가 있다'라며 사형 집행 방식을 단두대로 통일하자는 "법안"을 입안한 사람이다. 목이 잘린 것도 사실이 아니고 당시 기준에 76살까지 나름 장수했는데 평생 단두대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것을 억울해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의 후손들이 단두대 명칭을 바꿔달라고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한 후 아예 집안의 성을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는 외과의사이자 정형외과 아카데미 사무총장이던 앙투안 루이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기술자들이 달라붙어 제작했다. 여담으로 기요틴의 초기 버전은 날이 반월 모양이었는데 이를 본 루이 16세가 '저렇게 반월형이면 중간에 목뼈가 걸려서 한번에 안잘려서 죄수가 고통스러울꺼다.' 라며 날을 지금의 대각선으로 바꾸게 했다. 사실 루이 16세는 이전부터 열쇠와 자물쇠, 칼날 등에 취미가 있어서 이쪽에 조예가 깊었다.(결국 루이 16세는 기요틴으로 처형당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리나 베이 샌즈와 쌍용건설 (0) 2023.01.26 두바이 로얄 아틀란티스 리조트 & 레지던스 (0) 2023.01.26 슬램덩크 정대만 (0) 2023.01.26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 (0) 2023.01.25 누구나 인정했던 천재 폰 노이만 (0) 202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