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로코코의 여왕 - 마담 드 퐁파두르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2. 9. 00:10
    300x250

    마담 드 퐁파두르. 루이 15세의 애첩(로얄 미스트리스). 루이 15세의 눈에 들어 공식 정부가 되었는데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루이 15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평민이었지만 집안의 여유가 있던 브르주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음악과 문학 등 교양을 익혔다. (귀족 출신이 아닌 부르주아 출신이고 그녀의 성인 푸아송이 '생선'이란 뜻이라 궁궐 내에서 유독 많은 놀림과 질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말로 치면 베이글녀 상이었는데 당대 미인상이었다고 한다. 미모 외에도 높은 교양과 지적 매력으로 왕을 매혹시켰다. 또한 까탈스럽기 그지없었던 루이 15세의 성격을 가장 잘 받아주어 루이 15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퐁파두르 부인뿐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녀가 나이 들어 미모가 쇠하고 왕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자 베르사유 근처에 '사슴 정원'이라는 프랑스 최초의 왕 전용 하렘을 만들기도 했다.(루이 15세는 매우 기뻐했으나 사람들은 그녀를 '뚜쟁이'라며 욕했다) 심지어 왕비인 마리 레슈친스카도 다른 정부들과는 달리 그녀를 호의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지금으로 따지면 엄청 능력있는 미녀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며 그녀의 미모가 시든 이후에도 '왕관 없는 여왕'으로 불리며 엄청난 권세를 누렸으며 섭정까지 했었다. 또한 그녀는 당시 문화계와 패션계를 선도했는데 당대 유행시킨 패션은 오늘날 '로코코 스타일'이라고 불린다.(오죽하면 이걸 마담 퐁파두르 스타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특히 베르사유 궁 3층의 그녀의 살롱은 당대의 사상가와 문학가가 모이는 지적 향연의 장이 되었다.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등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며 나중에 혁명 사상을 퍼트리는 사상가들이 많이 드나들어 그녀는 프랑스혁명의 숨은 후원가로 불리기도 했다. 사실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며 판매가 금지되었던 백과전서를 판매 가능하도록 했으며, 가난한 귀족가문에서 유능한 장교들을 선발하도록 국왕에 청원하기도 했는데 이 정책에 의해 나폴레옹이 군인이 될 수 있었으니 프랑스혁명을 앞당긴 여인이라는 말이 완전 허언은 아니다. 그녀는 43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녀의 사인은 폐렴이라는 설, 혹은 루이 15세가 옮긴 성병이라는 설 등이 있다.

    그녀가 죽은 후 루이 15세는 '짐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눈물뿐이다' 라며 슬퍼했고 왕족이 아닌 그녀가 궁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볼테르는 그녀의 죽음을 접하고 "늙은 나는 살아있는데 한창 떄의 여인이 죽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애도했다고 한다. 왕의 애첩에게 이런 멘트를 할 정도면 정말 안타까워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녀의 정적들과 다른 애첩들은 "묘비명을 '20년을 처녀로, 15년은 창녀로, 7년을 뚜쟁이로 산 여인, 여기 잠들다'로 해야 한다고 비아냥댔다." 사후 그녀가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들은 정리하는데만 1년이 걸렸다고 하며, 그녀는 생전의 그녀의 재산을 대부분 루이 15세 앞으로 남겼고, 나머지는 남동생과 친구들에게 물려줬다. 루이 15세와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전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그녀가 생전에 기거했던 엘리제궁은 현재 프랑스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300x25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