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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을 찾습니다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9. 2. 00:20300x250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대한민국 내에서 흩어진 이산가족을 위해 1983년 6월 30일부터 1983년 11월 14일까지 KBS1에서 방영된 특별 생방송. 일수로 138일, 시간으로 총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하여 단일 생방송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최장기간 연속 생방송 기록을 갖고 있다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방송국 내부 인력과 전화를 받는 아르바이트생까지 합해 방송전담인력만 1,641명이며 사용된 테이프 수만 463개에 달한다.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당시는 인터넷은커녕 전화나 컬러 TV가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제치하에서 일제의 징용과 징병, 생계를 위한 이주부터 시작하여 6.25 당시 피난길을 겪으며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 생사를 모르고 헤어져 사는 경우가 많았다.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그 이전부터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시도는 있었고 라디오를 이용한 이산가족 찾기는 10년 전부터 진행됐지만 생각보다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관공서를 통해 찾는 방법도 불가능했던 것이 해방과 전쟁 와중에 행정문서가 파손된 경우가 많았고, 남아 있는 자료들도 전산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단독프로그램이 아닌 6.25 발발 33주년 특별기획 2부작 ‘지금도 이런 아픔이’라는 프로그램의 코너 중 하나로 이산가족 150명을 공개홀에 모셔 놓고 사연을 듣는 방식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전 신청자만 천 명 가까이 몰려 KBS중앙홀이 꽉 찰 정도였고 전화통은 불이 나기 시작해서 당시 KBS의 모든 전화회선이 통화중이었다고 한다. 또한 방송을 본 이산가족들이 밤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까지 사전 출연약속 없이 혹시라도 방송에 잠깐이라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무작정 여의도 KBS 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KBS는 1시간 30분으로 계획된 방송시각을 다음날 새벽까지 긴급 연장했고 이날 방송시각 5시간 동안에만 29 가족이 상봉했다.
다음 날 낡이 밝기도 전부터 1만여 넘는 이산가족들이 KBS본관 앞에서 장사진을 쳤다. 프로그램 출연 및 이산가족 문의전화로 방송국의 전 업무가 마비될 정도가 되자 KBS 편성책임자는 다음 날인 금요일 밤에도 기존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연속생방송을 하루 더 연장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원래 방송장소였던 공개홀 제1스튜디오가 비좁아지자 본관 중앙홀에 좌석을 마련했고, 인근 여의도 공원에서도 2원 방송을 시작했다. 2일 차가 되었는데 마침 그날이 종일방송이 가능했던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KBS는 정오뉴스를 제외한 모든 정규프로 편성을 취소하고 자사의 간판 아나운서들을 모두 투입하며 생방송을 진행했다. 주말이 되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방송국으로 몰려와서 노숙을 했으며 진행자와 제작진들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겨우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방송을 진행했다. 일요일 낮 방송은 무려 7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 4일차가 되자 방송사고의 연속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KBS 본사와 각 지역방송국 간의 손발이 맞아가기 시작하면서 진행이 매끄러워졌다. 지역방송국들에서 자기네 스튜디오에 온 이산가족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방송에 내보내기 위한 경쟁도 있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생방송을 못 본 사람들을 위해 KBS 본사와 지역방송국 로비에선 지난 방송들을 비디오로 재방영하였다. 이후 단파라디오를 통해 동시 생방송을 시작해서 중국과 소련에서도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LA와 여의도 간에 위성을 연결하여 상봉을 시도, 세 가족이 만나기도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이 장면을 오마주 했다. 이후 생방송을 상시편성으로 전환하고, 라디오를 통해서도 동시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방송을 통해 만난 이산가족들의 사연은 방송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다. 이렇게 진행된 생방송은 11월 14일까지 총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되어 ‘단일주제 연속 생방송’이라는 주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1990년 1월에는 사할린방송국-서울-대구KBS를 연결하는 3각 위성방송을 통해 ‘사할린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사할린섬 동포와 국내 거주 18 가족이 극적으로 상봉하기도 했다.
KBS와 여의도공원은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벽보로 도배되었다. KBS의 모든 기둥과 벽은 사람이 손 닿는 모든 부분에 벽보가 붙었고, 여의도공원 바닥도 벽보로 가득찼다. 이 벽보들을 훑어가면서 보여주는 것이 카메라맨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입간판을 세우거나 몸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네킹이나 허수아비를 세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연이나 풍선으로 날리기도 했다. 그런데 벽과 바닥에 붙어 있던 그 많은 종이 중에 단 한 장도 남이 붙인 것 위에 자기 것을 덧붙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방송을 통해 곽옥순과 패티김의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설운도는 당시 무명가수였는데 ‘잃어버린 30년’은 ‘아버지’란 곡을 급하게 개사해서 만든 노래였다. 설운도는 당시 아예 공개홀에 상주하며 시간 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으며 공개홀 한켠에서 쪽잠을 자고 이산가족들에게 나눠줄 김밥 포장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가수들도 중간중간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잠깐잠깐 진행자들이 쉬거나 방송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가수가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이때 나왔던 노래들을 묶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으며, 무명가수였던 설운도는 이후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300x250'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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