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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종 이방원이 원경왕후의 처가 여흥 민씨를 숙청한 이유
    부연설명 - 정보와 상식 2023. 9.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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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의 아내인 원경왕후는 진짜 말 그대로 태종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였다. 태종의 처가인 여흥 민씨가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고려 말부터 내려온 토호 중 하나였는데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 처가의 도움이 정말 컸다. 간단히 얘기해서 처가의 힘이 없었으면 반정은 불가능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근데 문제는 태종이 왕위에 오른 다음이었다. 처남들이 대놓고 자기네가 왕 만들어줬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게 태종 귀에까지 들어오고, 왕가의 일인 왕세자의 혼인 문제에 관여하려 하는가 하면 심지어 처남들이 태종에게 "세자 이외에 영특한 왕자는 없는 게 낫다"며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을 숙청하자는 이야기까지 꺼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태종 입장에선 '너네가 뭔데 단지 영특하다는 이유로 일국의 왕자를 죽이자고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왕 앞에서 왕족을 죽이자고 하는 것도 대경실색할 말이지만 저 말의 저의가 "똑똑한 왕자를 죽이고 세자를 왕위에 올려서 우리가 권세를 잡겠다"라는 걸 태종이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태종은 계모 신덕왕후의 치맛바람을 겪으면서 자기도 죽을뻔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외척에 치를 떠는 성격이었다. 근데 원경왕후 민씨 역시 남편을 왕으로 만드는 내조의 차원을 넘어 같이 목숨을 건 동지이자 여장부였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첫눈에 반한 금실 좋은 부부였지만 남편은 결국 왕의 입장에서 '이 나라를 여흥 민씨의 나라로 만들 수 없다' 라며 숙청을 선택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당시 신생 조선 입장에서는 왕조 안정화를 위해 사병까지 거느리고 있던 토호군벌들을 처리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사실 둘 사이는 위에 언급한 대로 애초에 결혼할 때부터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동등한 관계였다. 그 난리가 나는 와중에서도 태종과의 사이에 12명의 아이를 낳았으며(넷은 일찍 죽음), 원경왕후는 태종의 호색에 대해 질투도 심했고, 나중에 후사를 위해 후궁 들일 때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으나 결국 남편에 의해 친정이 멸문되었으니 참 기구한 운명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남편인 태종과는 일종의 애증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둘 사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마지막 낳은 아이는 태종이 처가를 숙청한 후 2년 후에 낳았다. 태종도 처가를 다 박살냈지만 끝까지 원경왕후를 폐비시키진 않았다.(물론 폐비시키려고 한 적도 있긴 하고, 새로 중전을 뽑으면 외척이 다시 생긴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세종이 죽은 어머니의 묘 옆에 절을 세우려 하자 상왕이 된 태종이 "그 옆에 나도 묻힐 텐데 거기 꼭 절을 지어야겠냐?" 라며 반대한 걸 봐도 태종 본인도 죽고 나선 먼저 간 아내와 합장한다는 걸 기정사실화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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